[한보 후유증/풀어야할 숙제들]政資法 이대로 안된다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이원재 기자] 한보사태에 대한 검찰수사결과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 문제점중 하나는 부분적으로 모순점을 안고 있는 현행 정치자금법의 실상이다. 이번 한보수사 과정에서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은 스스로 『거물급 실세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대가성이 없는 떡값은 처벌할 수 없다』며 이들에게 모두 면죄부를 줬다. 검찰이 이처럼 일반의 상식과 정서에는 아랑곳없이 수사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면서 내세운 논거는 「정치인이 후원회를 통하지 않고 직접 돈을 받았더라도 알선수재 공갈 협박 뇌물 등 다른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한 처벌하기 어렵다」는 현행 정치자금법의 조문상 해석이다. 이 역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검찰은 지난 95년 盧泰愚(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수사 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선거자금이라는 외형적 탈을 쓴 자금수수도 처벌해야 한다』며 「포괄적 뇌물」의 개념을 처벌의 잣대로 제시했다. 그러나 검찰이 과연 이번에 정치자금수수의혹이 제기된 정치인에 대해 대가성을 입증하기 위해 충분한 수사나 이권관련 조사를 했느냐는 의문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여야합의의 산물이다.여야는 지난 94년 정치자금법을 고치면서 「정치자금을 기부하고자 하는 자는 기명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해야 한다」(11조)는 조문앞에 「정당에」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명시, 정치인 개개인의 금품수수에 대한 규제를 풀어버렸다. 바로 이에 대한 의문제기와 법개정 주장은 한보사건 이전부터 각계에서 활발하게 제기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정치인 개개인의 정치자금수수 금지 △후원회의 익명기부폐지 △법인의 후원회 가입금지 등을 골자로 한 정치자금법 개정 입법청원서를 이미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金永來(김영래)아주대교수는 『뇌물성 정치자금수수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는 현행 정치자금법이 개혁되기 전에는 정치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치권내에서도 자성의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다.그러나 이번 한보사태를 계기로 얼마만큼 정치자금법이 개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행 정치자금법의 왜곡구조는 상당부분 「원칙을 벗어난」 우리의 고유한 정치문화에 기인한다. 문제된 11조도 지난 94년 야측의 주장에 의해 개정된 조항이다. 개인이건 정당이건 정치자금 기탁자를 모두 선관위에 신고해 신분이 노출될 경우에도 야측에 대한 정치자금 기탁자가 서슴없이 나타날 수 있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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