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97 선진정치/유권자 의식]

  • 입력 1997년 1월 6일 20시 12분


「朴濟均 기자」 지난해 4.11 총선 때 유권자 13만여명인 서울의 한 선거구에서 각당이 10만9천여명을 당원으로 선관위에 신고, 화제가 됐었다. 각 당의 지나친 「세(勢)부풀리기」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쉽게 도장을 찍어주는 유권자의 태도도 문제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선거제도 도입 역사가 일천했을 때는 그렇다치고 지난 10여년 동안의 선거실상을 보아도 『한나라의 정치수준은 국민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말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 “후보에 향응요구” 9.6% ▼ 그리고 『물론 1차적 책임주체는 정치권이지만 유권자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 또한 여전히 호소력을 갖는다. 해묵은 병폐인 「금품 및 향응 주고받기」는 아직 선거판을 더럽히는 주범중 하나다. 지난 92년 14대 국회의원 총선을 끝내고 중앙선관위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유권자중 「후보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요구해서」라고 이유를 밝힌 사람이 9.6%나 됐다. 申昌旻(신창민)중앙대교수는 『지난해 4.11 총선 때의 체험으로 봐도 유권자들의 의식이 과거 미국에서 밀가루를 가져다 풀던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진단했다. 任左淳(임좌순)중앙선관위선거관리실장은 『금품 등을 받은 유권자를 처벌하는 선례를 만들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지만 워낙 은밀하게 주고 받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선거때마다 쏟아지는 이른바 「선거민원」도 공명선거의 발목을 잡는 족쇄다. 「그린벨트를 풀어달라」 「국가보상을 받게 해달라」는 등 개인적 민원부터 교도소 장애인학교 하수종말처리장 쓰레기매립장 이전요구 등 지역이기주의성 민원에 이르기까지 선거민원은 한도 끝도 없다. 특히 지난 94년 통합선거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금품요구보다 취업청탁 등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민회의의 林采正(임채정)의원은 『선거 때 유권자들로부터 쏟아지는 각양각색의 민원 청탁들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언론이 요구하는 정책대결은 현실적으로 공허한 얘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여년간 줄곧 심화돼온 「지역할거식」 투표행태도 이제는 고쳐져야할 병리현상으로 지적된다. 지난 95년 6.27 지방선거가 끝난 뒤 한 여론조사에서 투표자의 52.9%가 「지역정서에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15대 총선 때도 수도권 유권자중 부산 경남 출신의 68.8%가 신한국당 후보에게, 호남출신 유권자중 73.2%가 국민회의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드러났다. 張明奉(장명봉)국민대교수와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 리서치의 安富根(안부근)전무 등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정서가 유권자의 「표심(票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며 『이같은 행태를 타파하지 않는 한 한국정치는 결코 한단계 위로 올라설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점증하는 기권율은 지역할거식 투표와는 또다른 측면에서 선거의 본질을 위협하는 구조적 병폐로 지적된다. 최근들어 투표일 전날 떠나는 「선거일 투어」라는 관광상품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 自覺만이 유일한 처방 ▼ 안전무는 『대선과 총선이 비슷한 시기에 치러질 경우 대선 투표율이 대략 10% 포인트 정도 높다』며 『지난해 총선 투표율(63.9%)을 감안할 때 올 대선 투표율은 14대의 81.9%보다 10% 가량 떨어진 70%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유권자 개인의 자각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처방이다. 金碩洙(김석수)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대선후보의 위법선거운동에 대한 경고 못지않게 유권자의 의식개혁에 역점을 두었다. 김위원장은 『오로지 지연 혈연 학연을 좇아 투표하거나 자신의 한표를 특정정당이나 후보를 위한 시혜행위 쯤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살아 있는 한, 금품이나 음식대접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관행이 청산되지 않는 한 깨끗한 선거는 기대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또 趙璇衡(조선형)여성유권자연맹회장 진간재변호사 등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각 시민단체 종교기관 언론 등이 유권자의 의식혁명을 유도하는 운동을 적극 전개해 반드시 새로운 유권자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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