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나그네길 떠난 ‘대중음악의 신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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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생’ 부른 원로가수 최희준 별세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등 히트, 60년대 재즈풍 새 트렌드 이끌어
밤무대 뛰며 간호하던 아내 숨지자 “喪妻는 못난 사람이 당하는 것”
국회의원 지낸 뒤 7년만에 복귀

부드러운 저음과 대중의 정서를 담은 노래로 1960, 70년대를 풍미했던 원로가수 최희준 씨가 ‘나그네길’이었던 인생을 마감했다. 동아일보DB
부드러운 저음과 대중의 정서를 담은 노래로 1960, 70년대를 풍미했던 원로가수 최희준 씨가 ‘나그네길’이었던 인생을 마감했다. 동아일보DB
‘하숙생’으로 유명한 원로가수 최희준(본명 최성준) 씨가 2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8년 미8군부대에서 활동하다 1961년 ‘목동의 노래’로 데뷔했고 이어 같은 해 발표한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로 큰 사랑을 받았다. ‘우리…’는 미국 재즈의 영향을 받은 ‘스탠더드 팝’ 바람을 선도하며, 트로트가 주류였던 가요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몰고 왔다.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서울대 법학과 출신 가수로, ‘60년대 대중음악의 신사’로도 불렸다.

‘진고개 신사’ ‘맨발의 청춘’ ‘빛과 그림자’ ‘하숙생’ 등 히트곡을 연달아 내며 10여 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1964년부터 1966년까지 TBC 가요대상 3연패를 기록했고, 1966년 처음 만들어진 MBC 10대가수상에서 초대 ‘가수왕’으로 뽑혔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하숙생’은 당시 철학을 전공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존재의 근원을 표현한 노래로도 통했다. 1991년 가수 이승환이 ‘하숙생’을 리메이크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좋아하는 남한 노래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아내 김현숙 씨가 1982년부터 유방암으로 투병하자 10여 년간 운영한 서울 중구의 레스토랑 ‘희준’을 처분하고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아내를 간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989년 세상을 떠난 아내는 치료를 받았던 연세의료원 암센터병동에 연구용으로 시신을 기부했다. 당시 고인은 “상처(喪妻)는 못난 사람이 당하는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란 말만 남겼다.

이후 고인은 1995년 정계에 입문해 이듬해 제15대 국회의원(새정치국민회의)에 당선됐다. 당선 후 방송 활동을 중단했지만 2002년 다시 TV에 출연했다. 7년 만에 콘서트도 열었다. 당시 주말 밤 소극장에서 공연했던 고인은 “내가 부른 노래에 팬들이 아로새긴 추억을 이번 무대를 통해 되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 “흥행과 상관없이 평생의 예술관이 담긴 음반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화관문화훈장,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을 받았다.

최규성 음악평론가는 “고인은 전쟁 직후인 1960년대 국가 재건의 분위기를 북돋는 건강한 노래로 대중가수의 품격을 높였으며, 당시 익숙지 않았던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개성 있는 보컬리스트의 전성시대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또 “대스타였지만 ‘찐빵’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했고, 어떤 장르를 해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고 애도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희연 씨와 아들 용범 정범 씨, 딸 유경 씨, 며느리 이은정 씨가 있다. 가수협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질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26일 오전 7시 45분. 02-2258-5940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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