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남극 10년만에 가보니 지구온난화 몸으로 느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장보고기지 다녀온 산악인 엄홍길씨

17일 서울 중구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엄홍길 대장이 남극 사진으로 제작한 기념수건을 보여주며 활짝 웃고 있다. 수건 속 사진은 지난해 11월 6일 엄 대장이 장보고과학기지 대원들과 함께 남극 브라우닝 산을 올랐을 때 찍은 것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7일 서울 중구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엄홍길 대장이 남극 사진으로 제작한 기념수건을 보여주며 활짝 웃고 있다. 수건 속 사진은 지난해 11월 6일 엄 대장이 장보고과학기지 대원들과 함께 남극 브라우닝 산을 올랐을 때 찍은 것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구 온난화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 중인 걸 느꼈습니다.”

 17일 서울 중구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산악인 엄홍길 대장(57)은 10년 만에 다시 남극을 찾은 소감을 말하며 걱정부터 털어놨다. 엄 대장은 극지연구소의 제안으로 얼마 전 남극에 있는 한국의 장보고과학기지(장보고기지)를 방문했다. 2007년 12월 남극 대륙의 최고봉 빈슨매시프(4892m) 등반 이후 10년 만이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6좌 등정에 성공한 엄 대장은 지난해 10월 25일부터 16일간 장보고기지에서 대원 17명과 함께 생활했다. 그는 대원들과 함께 기지 근처 멜버른 화산과 리트만 화산에서 화산암을 채취하고 난센 빙붕(氷棚·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얼음)에 가서 설치된 지진계를 점검했다.

 엄 대장은 “10년 전에는 12월에, 이번에는 10월에 방문했는데 체감 온도가 비슷했다”고 말했다. 북반구와 달리 남반구는 현재 여름철이다. 대원들로부터 “지난해 이맘때는 눈이 쌓여 있던 곳들이 올해는 한 달이나 앞서 눈이 모두 녹았다”란 설명을 들은 엄 대장은 “기후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극의 연구 환경은 매우 위험하다. 초속 10m가 넘는 강풍,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 등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 온난화는 이런 환경을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빙하가 좁아지고 얇아지면서 크레바스(얼음이 갈라진 틈)가 많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남극에선 불의의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2003년 세종과학기지 대원이 고무보트 전복으로 숨졌다. 2005년에는 아르헨티나 기지의 대원 2명이 크레바스에 빠져 사망했다. 엄 대장 자신도 그간 히말라야 험지를 오르며 동료와 후배, 셰르파들을 하나둘 떠나보낸 아픈 과거가 있다. 그는 대원들에게 “연구도 중요하지만 첫째도, 둘째도 ‘안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상치 못한 추억도 남겼다. 엄 대장은 대원들과 기지에서 약 300km 떨어진 엘리펀트 모레인 청빙(Blue Ice) 지대로 운석 탐사를 나갔다. 청빙 지대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 그대로 노출돼 있어 운석 탐사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그는 탐사 시작 20분 만에 일행 중 제일 먼저 운석을 발견했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작은 운석이었다. ‘엄홍길 탐사 운석’이란 이름이 붙었다.

 정부는 현재 남극 내륙에 진출하기 위해 장보고기지에서 직선 거리로 1700km에 이르는 남극점까지 ‘코리안 루트(K루트)’ 개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내륙 기지를 선점해야 심부빙하 채취 등 여러 기초과학 연구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남극은 지구의 먼 과거와 미래를 연구할 수 있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다.

 엄 대장은 “미국 등 선진국은 우리보다 몇십 년 일찍 남극에 진출했고 현재 중국도 무서운 속도로 남극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한국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엄홍길#남극#지구 온난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