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남이장군 후손의 ‘이산아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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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멘 남 교수 탈북 여동생 만나러 방한… 부친 6·25뒤 불가리아 요양중 결혼
南교수 두살때 北복귀 명령에 이별

어린 시절의 카멘 남 교수와 아버지(남승범 씨)의 모습. 이 사진을 찍고 얼마 뒤 북한으로 돌아간 아버지는 끝내 불가리아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선옥 씨 제공
어린 시절의 카멘 남 교수와 아버지(남승범 씨)의 모습. 이 사진을 찍고 얼마 뒤 북한으로 돌아간 아버지는 끝내 불가리아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선옥 씨 제공
“얼마 전 오빠 부부에게 줄 한복을 사는데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정말 믿기지가 않아요.”

2007년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 남선옥 씨(49·여·서울 노원구)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그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일을 하다가도 멍해질 때가 많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다가 남한에 정착하기까지의 노력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국경을 초월한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었던 아버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바로 며칠 뒤 만날 이복오빠 때문이다.

남 씨의 오빠는 29일 한국을 찾는다. 불가리아 소피아국립대 지리학 및 국가안보학 전공의 카멘 남 교수(59)다. 1989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62세로 숨진 아버지 남승범과 불가리아 여성 예카테리나 사이에서 태어난 오빠다. 남 씨는 아버지가 북한에서 재혼해 낳은 1남 2녀 중 둘째다. 언니(52)와 남동생(46)은 북한에 있다.

남 씨와 남 교수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다. 이복남매의 가슴 아픈 사연은 6·25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후 북한은 부상당한 군인을 요양이나 교육 목적으로 동유럽 국가로 보냈다. 남 씨의 아버지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아버지는 5년간 불가리아 정부 장학금으로 소피아대에서 공부하다 예카테리나를 만나 결혼했다. 1957년 남 교수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아버지가 1959년 북한의 명령으로 귀국하면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됐다.

아버지는 북한 김책공업종합대의 교수가 됐다. 얼마 뒤 어머니가 북한 주재 불가리아 대사관 비서로 발령받으며 부부는 극적으로 상봉한다. 그 사이 외아들인 남 교수는 불가리아 외가에 남겨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부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고 결국 대학교수 자리까지 빼앗긴 채 북한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됐다. 남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힘겹게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들 걱정에 2년 만에 홀로 불가리아로 돌아왔다. 이것이 부부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예카테리나는 학업을 계속해 소피아대 지리학과 교수가 됐다. 혹시 남편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연락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재혼하지 않고 남 교수를 키우며 지금까지 홀로 살고 있다. 남 씨에 따르면 아버지는 재혼 후 전력회사에 근무하다 세상을 떠났다. 남 씨는 아버지 사망 후에야 주변 사람을 통해 이복오빠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서도 7년이 지난 2014년에야 불가리아 한국대사관을 통해 남 교수와 처음 연락이 닿았다.

간간이 이메일만 주고받던 두 사람은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도움으로 상봉을 하게 됐다. 앞서 남 지사는 올 5월 불가리아를 방문했다가 남 교수의 사연을 전해 들은 뒤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남 씨는 “오빠도 얼마나 아버지가 보고 싶었는지 수없이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아버지를 찾아 달라고 했다더라. 공항에 제 아들을 데리고 나가 아버지의 흔적이라도 찾아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남이(南怡·1441∼1468) 장군의 19대손이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남선옥#카멘 남 교수#남이장군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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