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 영결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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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400여명 참석 애도… 의정부 선산에 안장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루스채플관에서 엄수된 고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 영결식. 조선일보 제공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루스채플관에서 엄수된 고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 영결식. 조선일보 제공
일민(逸民)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의 영결식이 12일 오전 모교인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루스채플관에서 엄수됐다.

고인이 다니던 벧엘교회 김서년 목사의 인도로 이날 오전 8시에 시작된 영결식에는 상주인 방성훈 스포츠조선 대표이사 발행인 겸 조선일보 이사 등 유족과 조선일보 임직원, 한승수 전 국무총리,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김석수 연세대 이사장,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김 목사는 영결예배에서 “고인이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4월 30일 부친의 기일을 맞았을 때 병상에서 일어나 의정부의 선영까지 올라갈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다. 고 방일영 선생과 형제간 우애도 돈독했다”며 추모했다. 방 상임고문은 열세 살에 아버지를 여읜 후 다섯 살 위인 형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강천석 조선일보 논설고문은 이날 “조간신문이 배달돼 문 앞에 떨어지는 소리를 두려워했던 고인의 자세가 조선일보를 변화시켰다”며 평생을 신문인으로 살아온 고인의 자세를 강조했다. 조사에 나선 김용학 연세대 총장도 “고인의 꼿꼿한 자세와 카랑카랑한 눈빛, 짧지만 강렬한 건배사와 축사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8년간 기자 생활을 한 고인은 “편집국장이 어릴 적부터 꿈이었는데 부장은커녕 차장 한 번 못 해보고 기자를 그만둔 게 한”이라며 기자직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다. 고인은 신문사 경영인으로서 언론의 재정 독립을 강조했고 이를 실천한 경영인으로 꼽힌다. 그는 자서전인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서 1970년대 중반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를 보며 “(언론의 독립을 위해선) 어떡하든 재정 독립을 이뤄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지면 개혁과 과감한 투자로 조선일보 부수를 크게 늘려 재정 안정화에 기여했다.

영결예배 후 고인의 운구 행렬은 서울 사직동 자택과 세종대로 조선일보 본사를 돌았다. 고인은 경기 의정부시 가능동 선산에 안장됐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방우영#영결식#조선일보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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