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는 이분들을 기립니다]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 外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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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린 영국인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1889∼1970·사진) 박사가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선교사 자격으로 한국에 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쳤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가 학살을 자행한 화성 제암리 현장을 촬영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폭로했고 일본 총리를 만나 만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일제의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1920년 한국을 떠났다가 1958년 돌아와 서울대 수의과 교수로 재직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 호국인물 신팔균 선생 ▼

일제강점기에 무장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신팔균 선생(1882∼1924·사진)이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됐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던 선생은 1909년 충북 진천으로 낙향해 보명학교를 열어 학생들에게 민족사상을 가르쳤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서간도와 베이징에서 항일투쟁을 이어나갔다. 독립군 공급처 역할을 하던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지냈고, 1920년대엔 서간도 무장투쟁 조직을 통합한 대한통의부의 군사위원장 겸 의용군사령관으로 부임해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무장투쟁을 이어가던 1924년 중국군 습격을 받아 순국했다.

▼ 6·25영웅 오금손 대위 ▼

6·25전쟁 당시 여군 장교로 활약한 오금손 대위(1931∼2004·사진)가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오수암 선생의 외동딸인 오 대위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중국인 가정에서 자라다 광복군에 입대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했다. 광복 이후엔 간호사로 근무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진 입대했다. 1950년 8월 포항 형산강전투에서 부상자들을 돌보던 중 병원을 기습한 북한군 중 6명을 사살한 공로로 2계급 특진해 대위로 진급했다. 북한군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지만 극적으로 탈출해 부대로 돌아와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스코필드#신팔균#오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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