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린 전 “김치는 귀한 수제음식… 뉴요커들 고추장에 크래커 찍어먹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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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푸드 글로벌 포럼 참석… 뉴욕 ‘장모김치’ 대표 로린 전

로린 전 장모김치 대표가 미국 시장에서 김치와 고추장으로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로린 전 장모김치 대표가 미국 시장에서 김치와 고추장으로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미식(美食)의 수도’라는 미국 뉴욕에서 김치와 고추장은 ‘변방의 음식’이었다. 그것을 ‘힙스터(유행에 민감한 사람)’가 즐기는 음식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이 있다. 미국에서 장모김치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로린 전(한국명 전혜원·45) 대표다.

현지에서 국내 대기업의 김치와 고추장은 주로 한인 마트에서 판매된다. 그러나 장모김치의 제품은 주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고급 슈퍼마켓 홀푸드와 딘앤델루카 등에서 팔린다. 최근 채널A와 동아일보가 주최한 ‘K-푸드 글로벌 포럼’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그는 초등학생 때 이민을 갔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정치사회학을 전공했고 로펌에 취직했다. 잘나가는 뉴요커였던 그가 어쩌다 김치 사업을 하게 됐을까.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느닷없이 해고돼 위기를 맞으면서 운명이 갈렸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싸 주는 김치는 고단한 뉴욕 생활을 달래는 식품이었다. 그 김치를 뉴요커들에게 팔아 보기로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김치는 뉴요커들에게 낯선 음식.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묘안이 필요했다. 마침 웰빙 바람을 타고 치즈나 요구르트 등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는 발효 식품이라는 ‘공통분모’를 이용하기로 했다. 같은 발효 식품인 김치와 고추장도 소화가 잘되는 건강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

‘냄새나는 음식’의 이미지도 바꿨다. 정성스레 담근 ‘귀한 수제 음식’의 이미지가 풍겨 나오게 하고 싶었다. 수제 잼이나 피클을 담는 잼병(mason jar)을 떠올렸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은 미국에서 김치와 고추장을 봉지에 담아 팔았지만, 그는 제품을 유리병에 담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디자인도 모던하게 바꿨다.

판매법도 정공법을 택했다. 한국 음식이지만 한인 마트인 H마트 등에는 납품하지 않았다. 현지인이 먹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맨해튼 부촌(富村)에서 매일 아침 시식 행사를 열었다. ‘고추장+불고기’, ‘고추장+비빔밥’의 한식 공식도 고집하지 않았다. 그 대신 현지인들이 즐기는 요리에 김치와 고추장을 넣는 요리법을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알렸다. 오이나 크래커 등을 고추장에 찍어 먹는 방식을 소개했다. 또 바비큐나 해물 요리 등에 고추장을, 리소토와 프리타타(이탈리아식 오믈렛)와 에그베네딕트 등에 김치를 재료로 쓰는 방식도 홍보했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현지에서 지명도가 높아지자 딘앤델루카의 판로를 뚫을 수 있게 된 것. 2012년 ‘김치 요리책: 김치를 먹는 60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영어로 펴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13년에는 미셸 오바마 여사가 김장을 담그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김치와 고추장에 관심이 더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도 그의 제품을 잇달아 소개했다. 지난해에는 북미 최대 식품박람회인 ‘팬시푸드쇼’에 고추장을 출품해 식품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소피 어워드’를 탔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이지만 정작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회사의 영문 사이트명인 ‘밀김치(Milkimchi)’의 뜻을 아세요? 우유(milk)와 김치(kimchi)의 합성어예요. 김치와 고추장이 우유처럼 모든 냉장고에 저장되길 바라는 뜻이 담겨 있죠. 김치와 고추장의 매력을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요.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로린 전#장모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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