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처럼 매운 곡도 준비… 귀가 얼얼할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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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 사이먼 래틀 2년만에 방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2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를 찾은 지휘자 사이먼 래틀. 그는 “한국처럼 클래식 음악에 대해 심오한 수준을 지닌 청중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2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를 찾은 지휘자 사이먼 래틀. 그는 “한국처럼 클래식 음악에 대해 심오한 수준을 지닌 청중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브루크너가 고급스러운 로스트 미트(구운 고기)라면 불레즈의 곡은 매운 양념 역할을 합니다. 김치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지휘자 사이먼 래틀(58)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2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내한공연 레퍼토리를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프로그램을 음식과 화풍에 비유하며 유쾌하게 말을 이어갔다. 베를린필은 11일 슈만 교향곡 1번 ‘봄’과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12일 불레즈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노타시옹’,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서정적’을 연주한다.

“불레즈는 미로와 칸딘스키를, 브루크너는 렘브란트의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노타시옹은 불레즈가 젊었을 때 짧은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것인데 작은 씨앗이던 피아노 악보를 나뭇가지가 많이 자란 성대한 곡으로 발전시켰죠.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만찬 같은 악보입니다. 각 작품에 서로 부족한 맛을 상호 보완해서 최종적으로 완벽한 맛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래틀은 “슈만의 ‘봄’이 기쁨과 축하, 설레는 마음이라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어둡고 파괴적이며 암울한 이미지로 봄이라는 테마는 같지만 대조적인 두 곡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2년 베를린필의 6대 지휘자로 취임한 그는 2018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이 ‘최고의 악단’을 떠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고국인 영국에서는 그가 돌아와 침체된 영국 음악계를 재건하기를 공공연히 바라는 분위기다. 그는 “내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주니 기쁘다”고 농담을 한 뒤 진지하게 답했다.

“앞으로 베를린필과 함께 할 5년은 긴 시간입니다. 혹자는 런던 심포니로 가느냐고 하는데, 그릇된 보도도 있었고요. 런던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많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다른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가능성도 열어두고 싶습니다. 비틀스의 노래처럼 64세가 돼도 나를 원할 것인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계획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우선순위에만 몰입하고 있습니다.”

래틀은 베를린필 취임 이후 바로크부터 현대 작곡가의 세계 초연 작품까지 레퍼토리를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번 내한 공연처럼 해외 투어 때도 현대음악을 선곡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 외국 악단들은 흥행을 고려해 브루크너조차 잘 고르지 않는다.

“모든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흐의 작품을 어제 작곡된 것처럼 연주하고, 진은숙과 불레즈의 작품이 마치 100년간 연주된 것처럼 들리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지금은 신진 작곡가들이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올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어요. 우리 시대의 현대음악은 한계 없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는 최근 베를린필 아카데미에 합격한 함경(오보에)과 장현성(바순) 등 젊은 한국 연주자들이 참여한다. 래틀은 “이들이 대단히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봄의 제전’은 무척 어렵지만 워낙 많이 연주한 작품이라 리허설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연주자들은 박자 하나, 음표 하나 틀리지 않고 대단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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