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50년 산증인 이지송 사장 ‘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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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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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억 스톡옵션 포기… 암투병 직원 67명에 사비 전달… 이번엔 퇴직금마저 전액기부
사장카드로 업무경비 충당 ‘판공비0’… 빚더미 LH 정상화 시키고 14일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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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대강당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지송 초대 사장(오른쪽)을 직원들이 ‘당신의 열정과 현신,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맞이하고 있다. LH 제공
1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대강당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지송 초대 사장(오른쪽)을 직원들이 ‘당신의 열정과 현신,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맞이하고 있다. LH 제공
한국 건설업계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73·사진)이 14일 퇴임하면서 퇴직금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그는 2011년 말 130억 원 상당의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 행사를 포기해 화제가 됐었다.

1965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공무원으로 건설인 인생을 시작한 이 사장은 현대건설 사장을 거쳐 2009년 9월 토지공사, 주택공사를 합한 LH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 퇴직금 기부에 앞선 ‘남몰래 선행’ 많아

LH에 따르면 이 사장은 퇴직금으로 받을 5700만 원 전액을 회사에 남기고 떠나기로 했다. LH 관계자는 “사회에 기부하거나 어려운 직원을 돕는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을 고민해 의미 있게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보잘것없는 금액이니 관심 갖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사실 이 사장은 사재를 털어 직원을 돕는 ‘남몰래 선행’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말 그는 직원 67명에게 손수 쓴 편지와 함께 현금 100만 원이 든 봉투를 일일이 전했다. 본인이나 가족이 암 투병으로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이 사장이 사비 6700만 원을 턴 것이었다. 행여 ‘요란한 소리’가 날까봐 비서를 통해 조용히 전달했는데 직원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

‘피부 관리 금일봉’도 빼놓을 수 없는 일화다. 2010년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직원 얼굴에 뾰루지가 잔뜩 나 있었다. 여직원은 “인사개혁 업무로 바빠 며칠째 잠을 못 잤다”고 했다. 며칠 뒤 이 직원은 발신인 이름도 없이 겉봉투에 ‘피부 관리’ 네 글자만 적힌 금일봉을 받았다. 이 사장이 개인 돈으로 마련한 ‘깜짝 선물’이었다.

2011년 말에는 이 사장이 현대건설 사장 겸 현대엔지니어링 사외이사로 재직할 때인 2005년 말 채권단으로부터 받은 130억 원 규모의 스톡옵션 5만 주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이 사장의 판공비(업무추진비)가 0원으로 등록돼 있는 것도 남다르다. 월급으로 업무경비를 충당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평소 “LH의 초대 사장직은 인생의 마지막 소명이다. 공직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순간 사사로운 마음을 내려놓았다. 공기업 수장으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신념을 밝힌 바 있다.

○ 50년간 산·학·관 거친 건설업계 역사

이 사장은 산업계, 학계, 관계를 두루 거친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다. 그가 건설업계에서 만든 역사는 ‘노력의 역사’다.

30년간 몸담은 현대건설에서는 워크아웃 상태이던 2003년 사장 자리에 올라 3년 만에 경영정상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취임 당시 920원이었던 현대건설 주가는 퇴임 무렵 5만 원대로 올랐다.

100조 원이 넘는 빚더미를 안고 혹독한 진통 끝에 출범한 LH에서는 과감한 사업 재조정과 인적 쇄신으로 통하는 ‘이지송식 개혁’을 추진하며 경영정상화에 헌신했다. 직원들과 함께 ‘팔아야 산다’고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전국을 찾아다녔고, 전국 사업장에서 막히는 일이 있으면 국회 내 의원실은 물론이고 구내 목욕탕까지 방문하며 의원을 만났다.

경기 파주시 운정3지구 보상이 늦어지자 LH 본사 앞에서 천막단식 농성을 벌이던 지역 주민들과 겨울밤을 지새우며 토론할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칠순이었다. 틈날 때마다 직원들과 회사 뒤뜰에서 부침개를 직접 부쳐 먹으며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노력은 성과로 나타났다. 2011년 524%이던 LH의 부채 비율은 지난해 466%로 낮아졌고, 금융부채 증가 속도도 2009년 20조 원에서 6조 원 수준으로 둔화됐다. 또 2년 연속 공기업 최대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 사장은 “사장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LH가 흔들림 없이 가려면 부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통합 LH 이름 아래 진정한 하나가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매일매일이 부채와의 전쟁이었고 생존과의 싸움이었지만 50년 건설인생에서 LH 초대 사장은 가장 자랑스러운 옷이었다”며 “이제 이 옷을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잠시 미뤄 뒀던 후학 양성의 꿈을 펼쳐보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교인 한양대에서 석좌교수를 맡았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이지송 사장#한국토지주택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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