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 첫 북한학 부부박사 나왔다

  • Array
  • 입력 2013년 2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영희 금융公수석연구원 ‘北주민 왜 작아졌나’ 논문
2002년 함께 탈북한 남편 김병욱씨도 2년 전 학위… 北약사 이혜경씨도 박사 따

첫 북한학 박사 탈북자 부부인 김영희 한국정책금융공사 수석연구원(왼쪽)과 남편 김병욱 씨. 김영희 씨 제공
첫 북한학 박사 탈북자 부부인 김영희 한국정책금융공사 수석연구원(왼쪽)과 남편 김병욱 씨. 김영희 씨 제공
북한학 연구로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첫 탈북자 부부가 탄생한다. 김영희 한국정책금융공사 수석연구원(48)과 그의 남편 김병욱 씨(50)가 그 주인공이다. 김 연구원은 ‘북한사회 신체 왜소’를 주제로 이달 말 동국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남편 김 씨도 2년 전 같은 학교에서 ‘북한사회의 민방위 제도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대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 원산경제대학(현재의 정준택경제대학)에서 회계(국가재정)를 전공하고 회계사로 근무했던 김 연구원은 2002년 남편 김 씨와 함께 한국에 왔다. 산업은행을 거쳐 2007년부터 정책금융공사에서 북한의 산업부문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분단 이전까지는 남한 주민보다 체격이 컸던 북한 주민이 왜 작아졌는지 △이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응은 적절했는지를 진단했다. 특히 1930년대 초 소련(러시아), 1950년대 말 중국, 1990년대 북한 등 세 곳 모두 대기근이 발생했지만 유독 북한에서만 20년 넘도록 신체 왜소 현상이 지속되는 이유를 찾으려 했다. 그는 “북한이 국방공업에 우선 투자하면서 식품 생산이 부족해졌는데도 당국은 절약 정신만을 강조하며 주민들 사이에 ‘저소비 의식’이 형성되도록 한 것이 신체 왜소 현상을 야기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또 1970년대 재일교포 북송과 베이비붐으로 인구가 늘어나는데도 식량공급대책보다 식량수급자 조절책에 몰두했다. 1970년대 말 장려했던 ‘키 크기 운동’도 1980년대 초 ‘몸을 조화롭게 발달시키자’라는 표현으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북한 당국은 ‘국가는 주민들의 신체 건강을 위해 모든 조치를 취했으나 개별 일꾼들이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다’라며 해당 관료를 처형하는 등 책임을 전가했다.

김 연구원은 “그동안 북한 주민의 신체 왜소 원인을 식량 부족만으로 몰아갔지만 이번 논문을 통해 정신적, 제도적 측면의 원인을 밝혀 낸 것에 의미가 있다”라며 “북한 체제의 변화 없이는 신체 왜소 현상의 극복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에서 약사로 근무하다 2002년 탈북한 이혜경 씨는 북한대학원대에서 ‘북한의 보건일꾼 양성 정책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이 씨의 논문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 체제의 상징이던 무상 치료를 유상 치료로 전환했다. 의사 약사 등 보건일꾼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북한 당국이 출퇴근을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에 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정상 출근하는 대신 환자에게 치료 명목의 비용을 징수해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탈북#김영희#이혜경#김병욱#북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