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女처럼 울고웃던 1970년대는 나의 또다른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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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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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일기-대담집 출간

실천적 문인의 삶을 기록한 일기와 대담집을 나란히 출간한 시인 고은은 “역사와 문학은 갈라놓을 수 없는 한 밥상 위의 반찬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길사 제공
실천적 문인의 삶을 기록한 일기와 대담집을 나란히 출간한 시인 고은은 “역사와 문학은 갈라놓을 수 없는 한 밥상 위의 반찬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길사 제공
‘문학 달지 마라. 문학 쓰디쓴 것이기를. 귀신이 토해내는 검은 핏덩이처럼 써라.’

암울한 시대에 대한 절절한 고민이 묻어나는 이 구절은 시인 고은(80)이 1973년 4월 13일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1974년 11월 20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만들고 경찰에 연행된 직후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제 던져졌다. … 이제부터 나는 내가 시대의 만유인력에 의해서 낙하할지 비상할지 어디로 사라져 소실점 저쪽의 넋으로 표류할지 알 수 없다.’

그가 1973년부터 4년간 쓴 일기와 출가 중이던 1959년에 적은 21일간의 단식 일기를 묶어 ‘바람의 사상’(한길사)을 출간했다. 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인은 자신의 일기를 “나와 역사의 무성교배로 만들어진 시대적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문학이 아닌 일기나 내는 처지가 된 것인가 싶어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정잡배들의 시시한 궤적들도 역사와 문학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했어요.”

1970년대 투쟁하는 지식인으로 변모했던 시인은 일기에 ‘총과 붓, 붓과 총의 충돌로 붓이 죽어가는 시대가 오는가’라고 탄식하며 ‘나 같은 순수시인을 참여시인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또 대표작인 ‘만인보’를 쓰던 당시의 시대상황, 김병익 박맹호 김현 백낙청 박목월 서정주 김동리 등 문단과 출판계 인맥에 얽힌 일화도 담았다.

시인은 “1970년대엔 문학과 역사를 동의어로 생각하고 살았고 순정 덩어리여서 비논리적인 눈으로 울고 웃었는데 그때가 우리의 처녀시절이었던 것 같다”며 “내 고향은 1950년대 전쟁이 끝난 폐허인데 이것은 본적지이고 1970년대가 나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바람의 사상’과 함께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두 세기의 달빛’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형수와의 대담집이다. 시인의 ‘본적지’가 포함된 1930∼1950년대 초반이 시대적 배경으로 ‘모국어를 잃은 한 식민지 소년이 해방을 맞고, 전쟁의 폐허에서 시를 짓게 되기까지 이야기’다.

“문학의 시대가 쭈그러들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지니는 의미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문학으로써 시대에 할 말을 전하겠습니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고은#일기#대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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