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화는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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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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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주호민-학예연구관 권태효 ‘신화를 논하다’

뱀의 해를 맞아 권태효 학예연구관(왼쪽)과 주호민 작가가 국립민속박물관의 나무 뱀조각 앞에 섰다. 이들은 초면이지만 한국신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주제로 열띤 대화를 나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뱀의 해를 맞아 권태효 학예연구관(왼쪽)과 주호민 작가가 국립민속박물관의 나무 뱀조각 앞에 섰다. 이들은 초면이지만 한국신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주제로 열띤 대화를 나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뱀의 해인 계사년(癸巳年). 뱀은 한국의 신화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선뜻 뱀 이야기를 하나 떠올려보라고 하면 막막해진다. 그리스·로마신화는 알아도 한국신화는 접할 기회가 적은 탓이다. 한국신화는 한민족 상상력의 원천이자 현재에도 유효한 시대정신을 담은 이야기보따리라고 강조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

네이버 웹툰에 한국신화를 소재로 한 ‘신과 함께’ 3부작(저승·이승·신화 편)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최근 단행본으로 펴낸 만화가 주호민 작가(32), 한국신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구전신화의 세계’ ‘한국의 거인설화’ 등의 책을 낸 권태효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48)이다. 권 학예연구관은 뱀띠이고, 주 작가는 곧 뱀띠 아기의 아빠가 된다.

권 연구관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에는 뱀을 마을신으로 모셨던 토산당이라는 신당이 남아 있다”며 “한국신화에서 뱀은 다산과 풍요, 불사와 재생을 상징하는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신화가 지금도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권 연구관은 “신화는 우리 민족의 상상력의 원천”이라며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신은 누구일까 등 근원적 질문이 던져지고 그 해답을 찾는 게 신화”라고 설명했다. 주 작가도 “신화는 어느 시대에나 유효한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신화는 홀대받고 있다. 외국신화는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을 훌륭한 작가가 나타나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널리 읽히게 됐다. 반면 한국신화는 그렇지 못했다. 권 연구관은 “한국신화의 상당 부분이 무속신화인데, 무속을 천시하는 분위기가 커서 그런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호민 작가의 새해인사 만화.
주호민 작가의 새해인사 만화.
‘신과 함께’ 웹툰에서도 일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건 다 뻥이다” “신은 하나다”라는 댓글을 달아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 작가는 “전통신화나 민속신앙에 종교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라며 “무속은 종교가 아니라 우리 생활과 밀착된 ‘문화’로 봐야 한다. 아무도 그리스·로마신화 읽으면서 진위를 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한국신화 속의 신들이 완벽하기보다 인간적이어서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신과 함께’에도 저승 차사들이 푸짐한 식사 접대 뇌물을 받고 저승명부에 적힌 사람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 작가는 “외국의 차사는 무자비하거나 악마적으로 등장하는데 한국신화 속 차사는 실수도 하고 정이 많은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신화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권 연구관은 한국신화에 나오는 동물을 주제로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을 구상하고 있다. 또 한국의 기원신화들을 모아 ‘한국신화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상반기에 낸다. 주 작가는 진취적 여성상을 그린 모험담인 바리공주와 자청비 신화를 만화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신화의 콘텐츠 활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주 작가는 “이제까지 창작자들이 익숙한 소재를 관성적으로 사용해온 면이 있다. 홍길동과 구미호를 끊임없이 리메이크하고 끊임없이 실패했다”며 “눈을 돌리면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권 연구관도 “대중적 콘텐츠는 신화를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신화가 왜곡되지 않는 수준에서 어느 정도 창작을 가미하고 인물과 사건을 흥미롭게 재해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주호민#권태효#신화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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