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저커버그-KAIST 공부벌레 “동네 빵집 살려보자” 손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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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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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권-유원상씨 ‘유쾌한 일상탈출’

‘통영 저커버그’와 KAIST 천재가 의기투합해 동네빵집 살리기에 나섰다. 경남 통영고 3학년생으로 컴퓨터·앱 프로그래머인 김필권 군(왼쪽)과 KAIST 3학년 유원상 씨가 유명 동네빵집과 온라인 고객을 연결해 주는 ‘헤이브레드’ 홈페이지를 펼쳐 보이며 장난스레 웃고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통영 저커버그’와 KAIST 천재가 의기투합해 동네빵집 살리기에 나섰다. 경남 통영고 3학년생으로 컴퓨터·앱 프로그래머인 김필권 군(왼쪽)과 KAIST 3학년 유원상 씨가 유명 동네빵집과 온라인 고객을 연결해 주는 ‘헤이브레드’ 홈페이지를 펼쳐 보이며 장난스레 웃고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1년 11월. 경남 통영고 2학년 김필권 군(18)은 한 달 만에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청했다. 김 군의 컴퓨터에는 그가 한 달간 불철주야로 만든 스마트폰용 단어 암기 애플리케이션(앱) ‘단어외워VOCA’의 완성본이 저장돼 있었다. 외우려는 영어 단어를 입력하면 뇌의 기억주기에 맞춰 1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 단위로 ‘복습하라’는 알람 메시지가 스마트폰에 전송되는 앱이다. 김 군은 꼬박 한 달을 고생해 만든 앱을 ‘친구들에게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앱스토어에 무료로 올렸다.

단어외워VOCA는 올해 대한민국 앱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고등학생다운 참신한 발상’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상을 받았다. 여러 개발업체가 인턴직을 제의하며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새로운 앱 ‘통고(통영고)밥상’을 만들었다. 평소 친구들이 등교하면 가장 궁금해하는 게 ‘오늘 점심 메뉴는 뭘까’라는 점에 착안해 당일 식단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모교를 위해 한 가장 뿌듯한 일”이라고 했다. 고향 친구들은 그를 ‘통영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로 고교 시절 만든 음악 소개 프로그램을 100만 달러에 팔라는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제안을 물리치고 무료로 배포했다)’라 부르며 자랑스러워한다.

김 군은 어렸을 적부터 통영에서 컴퓨터광으로 이름을 날렸다. 학교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성적이 하위권이었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겠다며 친구들이 내신 공부를 할 때 KAIST 영재교육원 등을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공부를 했다.

#2012년 6월. KAIST 화학과 3학년 유원상 씨(20)는 처음으로 ‘일탈’을 했다. 경기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KAIST에 단번에 합격해 엘리트 코스를 밟던 유 씨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휴학계를 냈다. 김 군을 만난 뒤였다.

두 사람은 4월 창업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창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서 알게 됐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고 전공과 나이도 달랐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사업에 도전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전통 있는 서울 ‘동네 빵집’들이 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려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장인(匠人)이 만든 빵을 먹고 싶어도 시간에 쫓기고 거리가 멀어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빵을 사 ‘문 앞까지’ 보내주는 온라인 기업 ‘헤이브레드’를 차렸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첩첩산중이었다. 신선한 빵만 제공한다는 철학에 투철한 장인들을 설득하는 게 급선무였다. 여러 차례 찾아가 당일 배송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하나둘 계약을 따냈다. 이들과 손잡은 빵집은 1978년부터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수제 빵을 만들어 온 피터팬제과, 1988년부터 유명 제과점을 거친 파티시에가 올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롤링핀 등 엄선한 5곳이다.

헤이브레드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틀 전에 주문을 받은 뒤 제휴 빵집에 의뢰해 만든 빵을 택배로 고객의 집이나 직장으로 보낸다. 헤이브레드 대표인 유 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문 앞에 우유가 배달돼 있듯 고객들은 당일 저녁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원하는 시간에 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웹사이트에서 승부하다 보니 김 군의 역할도 중요했다. 주요 타깃인 20∼40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홈페이지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넣는 한편으로 재고가 생기지 않도록 새로 들어온 빵을 잘 보이게 화면에 노출시켰다. 그는 고3 수험생 신분이지만 웹페이지 작업이다 회의다 해서 4월부터 반년 넘게 매주 주말 고속버스를 타고 통영과 서울을 오갔다. 일요일 오후 11시 막차를 타고 월요일 오전 3시 통영에 도착한 뒤에도 등교 전까지 계속 웹페이지를 손봤을 정도다.

갖은 고생 끝에 지난달 8일 정식 개장한 헤이브레드는 첫 달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렸다. 입소문을 듣고 한 달 만에 120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한번 이용한 고객의 재구매율도 30%까지 올랐다. 그러나 아직 이들 손에 남는 돈은 거의 없다. 그래도 표정은 밝았다.

“큰돈 벌려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에요. 대기업에 밀려 움츠렸던 빵 장인들이 다시 어깨를 펴고, 고객들은 편하게 집에서 빵을 먹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재미를 느끼니 그것만으로 일석삼조네요.”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김필권#유원상#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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