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들 취업공장 같아… 학생들 도전의식 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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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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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임브리지대 대신 경희대 온 후퍼씨의 부총학생회장 도전

영국인 제임스 후퍼 씨(25·경희대 지리학과 3학년·사진)의 이력은 화려하다. 열아홉이던 2006년 최연소 영국인으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고 이듬해에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 반 바퀴를 396일 만에 돌았다. 대장정을 마쳤을 때 후퍼 씨는 스물한 살에 불과했다.

기후변화와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리학과 진학을 결심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맨체스터대 등에 지원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합격통지를 받았지만 후퍼 씨는 권위적이고 학술적인 학교 분위기가 도전과 모험을 이어온 자신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 ‘코리아행’을 택하고 경희대 지리학과에 입학했다.

2년 동안 대학을 다니며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무동력 횡단을 하는 등 한국에서도 모험심을 키운 후퍼 씨는 22일 2013년 경희대 부총학생회장 후보 출마라는 또 한 번의 도전을 끝마쳤다. 그는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외국인 부총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만큼의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19일 총학생회장 투표 첫날.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교정에서 만난 후퍼 씨는 아직 서툰 한국어로 “한국 대학은 마치 취업준비생을 찍어내는 공장 같다. 학점 주고 졸업장을 쥐여주며 사회로 내보내는…. 학생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고 출마 이유를 밝혔다. 그는 “큰 능력과 가능성을 가진 친구들이 단순히 ‘취업’이란 꿈만 갖는 현실은 대학의 무책임이 만든 결과”라고 덧붙였다.

후퍼 씨는 한국 대학생이 높은 학점과 토익, 취업용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것을 답답해했다. 성공의 방법과 결과 모두 ‘취업’ 하나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대학생들은 배우려는 의지가 아주 강하고 성공하려는 욕심도 크다. 하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성공할 수 있는 다른 수많은 방법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후퍼 씨는 대학의 역할이 좋은 강의를 제공하는 데 한정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 첫 탐험이었던 자전거 여행도 학교에 계획서 한 장 제출한 것이 시작이었다”며 “대학은 학생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기회를 주는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도전은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한 송창섭 씨(29·법학과 4학년)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무동력 횡단을 함께하기도 했던 두 사람은 ‘여행에서 쌓은 경험을 후배들도 할 수 있게 하자’는 데 동의해 총학생회 선거 출마를 결심했다.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도전장학금’ ‘생활습관프로그램’ 등은 모두 이들의 여행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스스로 계획한 대외활동을 수행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그동안의 학교생활에서 볼 수 없었던 체육 및 예술 프로그램을 발굴하자는 것.

후퍼 씨는 “한국 대학생들이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 경험도 없던 후퍼 씨가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그린란드에서 시작해 미국과 멕시코, 남미 10여 개국을 거쳐 4만4000km의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자신감 덕분이었다. 그는 “모두들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두렵다는 이유로 주저하면 절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2시, 선거는 득표율 62.9% 대 33.5%로 후퍼 씨의 ‘낙선’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의 푸른 눈에서는 아쉬움보다 선거운동을 끝냈다는 홀가분함이 묻어났다. 그는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선거를 준비하며 대학생들의 깊은 이야기를 듣고 치열하게 방법을 고민했던 경험은 제게 또 다른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경희대#부총학생회장#후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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