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그리… 목따기… 과격한 북한식 표현, 사전 찾아가며 순화하느라 애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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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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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북한학과 김병욱씨
탈북자 출신 다섯번째 박사로

‘북한 군 수뇌부의 목 따기 전술’ ‘깡그리 동원되는 인민들’….

과격한 북한식 표현에 교수들은 머리를 흔들었다. 수없이 문장을 고쳐야 했다. 280쪽 분량의 박사 논문을 쓰면서 남북한의 각종 사전을 닳도록 뒤적거렸다. 탈북자 김병욱 씨(49·사진)의 박사학위 논문은 이렇게 탄생했다.

김 씨는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북한의 지역방위체계를 연구한 논문으로 다음 달 박사학위를 받는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이애란 경인여대 겸임교수, 박수현 묘향산한의원 원장에 이은 탈북자 출신 국내 박사 제5호가 된다.

“어머니의 ‘성분’이 나빠 평양에서 좋은 대학을 못 가고 대학원도 포기했던 한을 풀고 꿈을 이뤘습니다.”

2002년 탈북한 그가 석·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는 6년 반이 걸렸다.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논문을 준비하는 1년 동안은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고3 수험생 같은 생활을 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한국식 문장과 표현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을 도와준 사람조차 “논문 초안을 보름 동안 읽고서야 내용을 이해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인권분과위원회 보좌위원으로 일하는 김 씨는 “탈북자 2만 명 시대에 정부의 탈북자 정책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정책금융공사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부인 김영희 씨도 북한경제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어 최초의 탈북자 박사 부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탈북자 박사 4호인 한의사 박수현 씨의 막냇 동생 세현 씨에 이어 또 다른 동생 태현 씨까지 28일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탈북 한의사 3형제’가 탄생했다. 태현 씨는 “북한에서는 한자를 잘 쓰지 않는 탓에 한의학 공부가 더 힘들었다. 엉덩이에 종기가 났을 때는 한 달 동안 서서 공부한 적도 있다”며 기뻐했다. 박 씨는 동생의 합격 소식을 전하며 “나도 10년 안에 미국 하버드대 철학박사 학위를 따겠다는 새 목표를 정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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