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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허수경 시인 “타국살이 우리말 갈증, 詩에 쏟아냈죠”

입력 2011-01-20 03:00업데이트 2015-05-2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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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 낸 在獨 10년 만의 귀향이다. 허수경 시인(47·사진). 1992년부터 독일 뮌스터대에서 공부해온 그는 2001년 동서문학상을 받기 위해 잠시 방한한 뒤 독일로 떠났다. 그 사이 시집 한 권과 산문집 한 권이 프로필의 저서 목록에 더해졌지만, 그는 독일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2006년 고대근동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인 교수와 결혼했다.

“낯설 줄 알았는데 많이 반겨 주셔서…. 집에 온 것 같습니다.” 명료한 음성에는 사투리 억양이 섞여 있었다. 시인의 고향인 경남 진주 사투리 가 아름답게 흘러넘치는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떠올리게 했다. 19일 간담회에서 만난 그의 손에는 6년 만의 새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문학동네)이 들려 있었다. 기존 판형보다 두 배 큰 자신의 시집 특별판을 들춰 보면서 “내 시의 수다스러움을 구렁에서 건져주는 느낌”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자전적 성장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도 이번 주에 출간된다고 했다

“이번 시집은 꽤나 말이 많아졌어요. 우리말 쓸 일이 거의 없어서 시에 쏟아내다 보니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하고….(웃음)” 행이 길어진 것만이 아니다. 희곡 형식을 빌린 시도 있고, 에세이와 닮은 작품도 있다. 어떤 옷을 입었든, 허수경 시의 불길은 다를 바 없이 뜨겁다. ‘나는 아직도 안개처럼 뜨건하지만 차디찬 발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그냥 말해보는 거야// 적혈구가 백혈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던/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처럼.’(‘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처럼’에서)

생활하기 위해 써야 하는 독일어, 전공 때문에 배워야 하는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모국어를 벼리는 시인임에도 다른 언어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신기한 일이지요. 다른 언어는 몇 달만 안 써도 금세 잊어버리는데, 모국어는 잊히지 않아요. 언어가 내 속에 들어와 산달까요.” 그는 최근 꾼 꿈 얘기를 했다. “꿈에 엄마가 나왔는데 독일어로 말하는 겁니다. 내가 우리말로 물어봤는데 말이지요. 깨어나선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는데…쓸쓸했어요.” 어머니와 모국어가 등가였을 시인에게는, 비록 꿈이었다 해도 그 어긋남이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시인이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이야기를 했다. “나보코프가 망명한 정치인이었던 부친의 이야기를 썼어요. 부친이 19세기 말에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내용이었는데, 실은 나보코프는 중앙아시아를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십 년 뒤 한 독문학자가 나보코프의 글을 실제 중앙아시아의 지리와 꼼꼼하게 비교해 봤는데 몇 가지 지명을 제외하곤 같았더랍니다. 우리 삶이란 때로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호할 때가 있지만, ‘없을 수도 있는 길’을 재건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 아닐까요.”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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