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들에 러브레터 늘어… 사랑의 가교 멈출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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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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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포탄 떨어져 아내 피란 보내고 연평우체국 지키는 정창권 국장

북한군의 포격에 집이 다 부서지고 추가도발마저 우려되는 상황에도 연평우체국 정창권 국장은 섬을 떠나지 않았다. 옥상을 뚫고 집 안으로 들어온 포탄이 폭발해 집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섬과 육지의 소식을 잇는 일만큼은 그만둘 수가 없다. 연평도=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북한군의 포격에 집이 다 부서지고 추가도발마저 우려되는 상황에도 연평우체국 정창권 국장은 섬을 떠나지 않았다. 옥상을 뚫고 집 안으로 들어온 포탄이 폭발해 집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섬과 육지의 소식을 잇는 일만큼은 그만둘 수가 없다. 연평도=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인천 옹진군 연평도 주민 1300여 명의 우편물을 책임지고 있는 연평우체국 정창권 국장(56)은 북한의 포격이 있었던 지난달 23일 오후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배를 타기 위해 당섬 나루에 있었다. 배가 나루에 닿는 순간 마을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정 국장은 우체국 옆 자신의 집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아내가 집에 있는데….” 정 국장은 다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집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포탄이 침실 쪽 천장을 뚫고 들어와 폭발하면서 유리창 쪽 벽에 큰 구멍을 냈다. 거실에 있던 아내가 다치지 않은 것은 기적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아내는 침착하게 불을 끄고 있었다고 한다. 6일 만난 정 국장은 “파편이 돼 사방으로 흩어졌어야 할 포탄 껍데기 부분이 몇 갈래로 찢어지면서 아내가 기적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포탄이 떨어진 현장을 치우지 않고 보존하고 있었다.

아내는 당시 충격으로 귀의 통증과 두통을 호소했다.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정 국장은 아내를 인천으로 피란 보냈다. 하지만 자신은 연평도를 떠나지 않았다. “우체국 문을 마냥 닫을 수도 없었지만, 그때 도망쳐 나갔다면 평생 불타는 마을만 기억에 남게 될 것 같았죠.” 북한의 추가도발 개연성으로 아직은 긴장되고 어수선하지만 몇몇 주민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도 했다.

정 국장은 아버지 정진섭 씨(86)에 이어 연평우체국장을 지내고 있다. 정진섭 씨는 1962년 직접 건물을 세우고 1대 우체국장으로 취임했다. 면 단위 마을에는 주민이 우체국 건물을 세우고 중앙우체국 승인을 받으면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는 ‘별정우체국’이 700개 정도 있다고 한다. 북한의 추가 도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피란을 가지 않고 자리를 지킨 정 국장 때문에 연평도 해병대 장병들의 사기가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한 우체국 직원은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연평도 장병들의 연인들이 보내는 ‘러브레터’가 크게 늘었다”고 귀띔했다. 정 국장은 “이렇게 소식이라도 계속 오고 가야 섬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오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인천 찜질방에도 직원을 파견하고 우편 수발 업무를 계속 하고 있는 정 국장은 최근 마을 복구와 보상 문제를 놓고 주민들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주민들의 처지가 다르니 보상에 대한 요구사항도 다를 수밖에 없겠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도 주민들끼리 서먹하게 지내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정 국장은 “마을이 빨리 복구돼 주민들이 예전처럼 웃으면서 인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평도=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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