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아버지’ 美재런 레이니어 e메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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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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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끼리끼리 문화’ 많아 광신도 같은 행동 종종 발생”

재런 레이니어 씨
재런 레이니어 씨
“애플은 제품을 다수결로 디자인하지 않고, 구글도 프로그램을 다수결로 설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핵심 사업을 최고의 개인에게 맡기죠.”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재런 레이니어 씨(사진)는 25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인터넷을 맹신하면 마오쩌둥(毛澤東)의 홍위병 또는 파시즘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다. 1985년 VPL이라는 회사를 세워 최초로 3차원(3D) 가상현실을 상용화해 ‘가상현실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교향곡 작곡가이자 영화감독으로도 유명해 그의 인터넷 비판은 미국에서도 큰 논란이 됐다. 레이니어 씨는 다음 달 10일 지식경제부가 주최하는 ‘테크플러스’ 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올해 초 ‘당신은 기계가 아니다(You are not a gadget)’라는 책을 펴내 화제를 모았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추천받은 정보’, ‘맞춤형 검색결과’ 등 자신의 의견과 비슷한 의견만 반복해 듣기 때문에 논쟁과 토론 대신 극단적인 의견대립이 늘어나는 현상을 비판한 책이었다. 최근까지도 많은 이들은 인터넷 덕분에 대중의 참여가 바탕이 된 새로운 민주주의와 문화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사람들이 많이 링크한 정보를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해 앞서 보여주는 구글의 검색 결과나 전문가 대신 수많은 누리꾼을 편집자로 받아들인 결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보다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위키피디아 등이 그 근거였다.

하지만 레이니어 씨는 “일반적인 내용이라면 몰라도 중요한 결정일수록 다수결의 원칙은 틀린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검색엔진은 전문적인 자료일수록 찾아내지 못하고, 위키피디아도 복잡한 주제일수록 오류가 많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민주적으로 의견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근거가 없다고 했다. 레이니어 씨는 “선거 입후보자를 뽑거나 가격을 결정하는 등 ‘평균값’을 정하는 일을 빼면 다수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거의 없다”며 “온라인에서는 자신의 의견과 비슷한 의견만 듣기가 오프라인보다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직폭력배나 광신도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 때문에 그는 기술 혐오론자라는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그는 “나는 ‘안티 인터넷’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에서는 ‘티파티’라는 극우 정치세력이 페이스북 등 인터넷을 통해 조직됐는데 이들의 활동비를 현 행정부에 반대하는 부자들이 지원해 논란이 됐다. 레이니어 씨는 “공짜로 일하는 블로거를 약간의 돈으로 매수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라며 “이런 뉴스를 밝힌 건 블로거가 아니라 신뢰받는 언론의 심층 보도”라고 말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일수록 전문가들이 불특정다수보다 나은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며 감정이입이 필요한 일일수록 익명 뒤에 숨은 불특정다수의 말을 듣기보다 재능 있는 개인의 역할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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