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化門’… 60년만에 복원 현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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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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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제작 6·25전쟁때 불타
1900년 찍은 사진서 서체 복원
각자장 오옥진씨 본격 작업

8일 경기 김포시 고촌읍의 각자(刻字)공방에서 경복궁 광화문 현판의 목판 조각 작업이 시작됐다.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기능보유자 오옥진 씨의 조교인 김각환 씨가 글자의 테두리선을 파내고 있다. 김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8일 경기 김포시 고촌읍의 각자(刻字)공방에서 경복궁 광화문 현판의 목판 조각 작업이 시작됐다.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기능보유자 오옥진 씨의 조교인 김각환 씨가 글자의 테두리선을 파내고 있다. 김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8일 오후 1시 경기 김포시 고촌읍의 각자(刻字·글자조각) 공방. 가로 3.9m, 세로 1.5m 크기의 소나무 목판에 光化門(광화문)이란 글씨가 붙어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 기능보유자인 오옥진 씨(75)가 20cm 길이의 창칼을 집어 들었다. 첫 글자 ‘光’의 테두리를 돌아가면서 천천히 칼집을 내기 시작했다. 글자의 테두리를 따라 목판을 먼저 파내는 서선(書線) 작업이었다. 글씨의 삐침 등을 그대로 유지하고 붓글씨 분위기를 살리느라 칼을 다루는 오 씨의 손길은 섬세하고 조심스러웠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光’ 자의 테두리 칼집 작업이 마무리됐다. 잠시 후 조교 김각환 씨도 창칼을 들고 스승 오 씨의 작업을 도왔다.

복원 중인 광화문에 걸 현판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865년 광화문 중건 때 제작했던 한자 현판이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타 사라진 지 60년 만에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순간이었다.

각자 분야의 최고 명인인 오 씨는 7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중건 당시 서체로 복원한 광화문 글씨를 전달받았다. 1900년 전후에 촬영한 광화문 현판 사진을 찾아내 당시 서체대로 복원한 것이다. 오 씨는 글씨를 목판 표면에 붙이고 이날부터 본격적인 각자 작업에 들어갔다. 오 씨는 “현판이 하도 커서 서울의 작업실에서 하지 못하고 이곳 김포의 널찍한 작업실로 옮겨왔다”며 “경복궁 복원의 대미를 장식하는 현판인 만큼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 씨는 세 글자의 테두리 칼집만 내고 끌로 바닥을 파내는 작업은 하지 않았다. 바닥 파내는 깊이를 1cm로 할지, 0.5cm로 할지 좀 더 고민하기로 한 것이다. 조교인 김 씨는 “경복궁에 있는 현판 글씨는 대개 바닥을 1cm 정도 파냈는데 광화문의 경우 경복궁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좀 더 고민하기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각자 작업은 다음 주말에 마무리된다. 이어 현판의 바깥 테를 만들어 붙이고 바탕에 흰색, 글씨에 검은색을 칠한 뒤 테두리를 단청한다. 문화재청은 이달 말 복원된 현판을 광화문 목조 누각의 2층 처마에 걸 계획이다. 흰 천으로 현판을 감싸 가린 뒤 광화문 복원 기념행사가 열리는 8월 15일 제막식과 함께 현판을 공개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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