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학생들에게 모국 가르치려 주변반대 뚫고 한민족학교 세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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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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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한민족학교 엄 넬리 교장
‘러시아 심장부에…’ 출판 기념회

러시아 모스크바 제1086 한민족학교 엄 넬리교장이 1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종엽 기자
러시아 모스크바 제1086 한민족학교 엄 넬리교장이 1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종엽 기자
“저희 세대가 죽은 다음에는 고려인이 러시아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게 될 것 같아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제1086 한민족학교’ 설립자 엄 넬리 교장(70)이 1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자서전 ‘러시아 심장부에 활짝 핀 무궁화’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엄 교장은 러시아 이주 한인 3세로 1965년 모스크바 레닌사범대를 졸업한 후 교사로 일하다 1992년 9월 주변의 반대를 뚫고 러시아 한민족학교를 세웠다.

학교 설립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엄 교장은 자서전에서 “처음 1086 한민족학교가 만들어질 때 지역 당국과 지역교육위원회 등이 개교에 부정적이었다”며 “심지어 주변의 다른 학교 교직원까지 민족학교 설립에 반대했다”고 회상했다. 엄 교장은 러시아에 있는 이주 한인(고려인) 대부분이 한국어를 모르는 현실을 설립 근거로 들었다. 그는 “가정에서조차 러시아말만 들었던 고려인 학생들에게 모국 언어와 문화를 전달하려면 민족학교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해 설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 교장의 이런 주장에는 자신의 ‘체험’도 녹아 있다. 그 역시 1992년 한민족학교 설립 전까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쉰 살이 넘어 모국어를 처음 배웠다. 엄 교장은 “민족학교 설립자가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모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제 엄 교장은 “한국 TV 방송의 90% 이상을 이해한다”고 자평할 정도다.

엄 교장은 러시아 고려인 문화를 보존한 공로로 한국 정부에서는 2003년 국민훈장 석류장, 러시아 정부에서는 2006년 최고애국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애국심으로 항상 어떻게 하면 한민족으로서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규형 전 주러시아 대사는 축사에서 “한민족의 유산과 역사 문화를 전수하고 발전시키려는 엄 교장의 의지에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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