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無 부족 모겐족’에 희망의 싹을 틔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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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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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묘기축구 선구자 강성민 씨 인도차이나서 ‘제2 인생’

영화 ‘모겐족의 월드컵’ 주인공
태국 등 25곳에 100개팀 만들어


묘기 축구 신동 출신인 강성민 선교사(뒷줄 왼쪽)는 나라와 말, 생년월일이 없는 모겐족에게 희망 전도사다. 그와 함께 활짝 웃는 모겐족 아이들의 모습에서 꿈과 희망이 느껴진다. 사진 제공 강성민 선교사
묘기 축구 신동 출신인 강성민 선교사(뒷줄 왼쪽)는 나라와 말, 생년월일이 없는 모겐족에게 희망 전도사다. 그와 함께 활짝 웃는 모겐족 아이들의 모습에서 꿈과 희망이 느껴진다. 사진 제공 강성민 선교사
극심한 가난 속에서 공 하나로 꿈을 키우던 축구 신동이 인도차이나 반도의 희망 전도사가 됐다.

1일 개봉한 영화 ‘모겐족의 월드컵’ 주인공 강성민 선교사(47). 평신도인 그는 1995년 태국으로 건너가 축구 선교를 시작해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지대 라오 섬에 사는 모겐족의 축구팀을 만들어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영화화된 모겐족은 나라와 말, 생년월일이 없는 ‘3무’의 부족. 잠수를 잘해 ‘바다의 집시’로 불리는 그들에게 강 선교사는 공 하나로 정체성을 심어줬다. 그는 영화에도 직접 출연했다.

“이곳 사람들은 생활은 어렵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엄청납니다. 헝겊을 말아서 공을 차다가 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부족 추장이 찾아와 부탁했습니다. 환경이 너무 열악해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적극적이라 시작하게 됐죠. 모겐족 팀은 제가 만든 100번째 팀입니다.”

서울 영등포공고 출신인 강 선교사는 한국 프리스타일(묘기) 축구의 선구자다. 고 김용식 선생이 축구 묘기의 명맥을 이었지만 전신을 다 사용한 기술은 그가 처음 선보였다. 당시 지도했던 이영근 국회축구단 총감독(70)은 “강성민이 아무도 하지 않던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우희용(46)과 허남진(43)이 쉽게 배워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강 선교사는 묘기 축구로 성공할 수 있다는 주위의 권고에 따라 프리스타일에 전념했고 당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87년 종교에 귀의한 강 선교사는 1995년 실업축구 이랜드를 따라 태국에 갔다가 그해 말 그곳에 정착하게 됐다. 그는 “사람들이 축구를 무척 좋아했고 연일 내 이름이 신문 방송에 오르내렸다. 이곳이라면 내 꿈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태국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등 25개 구역에 4개씩 팀을 운영하며 3500여 명을 훈련시키고 있는 그는 300개 팀을 만드는 게 목표다. 5년 전부터 방콕에서 200km 떨어진 코랏에 축구센터도 짓고 있다. 그의 밑에서 축구를 한 아이들은 대학팀과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고 대표 선수도 3명(남자 2명, 여자 1명)이 탄생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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