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 배우러 간 파리서 한국민화에 꽂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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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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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궁중민화 작가 이수진 씨
“G20회의 선보일 일월오봉도
제자들과 하루 12시간씩 작업”

궁중민화 전문가 이수진 씨가 21일 자신이 그린 일월오봉도 병풍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달과 해,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이 궁중민화는 조선시대 어좌(御座·임금의 자리) 뒤에만 세울 수 있었다. 홍진환 기자
궁중민화 전문가 이수진 씨가 21일 자신이 그린 일월오봉도 병풍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달과 해,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이 궁중민화는 조선시대 어좌(御座·임금의 자리) 뒤에만 세울 수 있었다. 홍진환 기자
1996년 프랑스 파리. 키 작은 동양 여성 한 명이 센 강 근처 한 화랑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벌써 일주일째다. 그녀의 시선은 큼지막한 모란이 그려진 동양화에 꽂혀 있었다. “일본 사람이오?” 화랑 주인이 의심 반 호기심 반에 물었다. “아뇨, 한국인인데요.” 주인은 “이 그림도 한국에서 오래전에 건너온 그림”이라며 반가워했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파리로 유학을 갔던 이수진 씨(68·여)가 한국 궁중민화(民畵)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4년, 이 씨가 그린 궁중민화가 경복궁 건청궁에 들어간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올 11월 서울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상들에게 소개할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제작을 의뢰해왔기 때문.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어좌 뒤에만 세워뒀던 병풍. 2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 씨는 열두 폭짜리 ‘금강산 십장생도’를 손보고 있었다. “색감이 참 곱죠? 궁중민화는 원래 궁궐에서 화원들이 그리던 그림인데 임금이 양반들에게 하례품 등으로 내리면서 퍼져나갔어요.”

대학 졸업 후 전업주부로 지내던 이 씨는 52세였던 1994년 홀로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낸 후 하고 싶던 일을 해보기 위한 것. ‘모네’ 같은 서양화가를 꿈꾸며 떠난 유학이었지만 그가 정작 반한 것은 한국 그림이었다.

결국 3년 만에 귀국한 그는 가장 먼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을 찾았다. 제대로 민화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명맥이 끊겨가던 민화를 당시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학교도 없었다. 그는 책을 보면서 하루 7시간씩 민화를 공부했다. 그때 연습 삼아 그린 호랑이만 100마리가 넘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국산 순지 위에 먹과 천연물감을 이용해 그리는 민화는 완성하기까지 많게는 300만 원이 든다. “남편 몰래 집에서 돈도 많이 갖다 썼어요. 밥은 오징어로 대충 때우기 일쑤였고요.”

고군분투 끝에 서광이 비쳤다. 2005년부터 3년 연속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 입상하자 해외에서 먼저 관심을 보였다.

미국 뉴욕 시장 초청으로 한국인 이민 103주년 기념 전시회를 열었다. 프랑스 파리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그러자 한국도 서서히 손을 내밀었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로부터 전통문화예술사업지원자금으로 1000만 원을 받았다. 그는 “돈을 떠나 이제 한국에서도 민화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점에 정신적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이 씨는 비난보다 두려웠던 무관심의 세월을 떠올리고는 연방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 씨는 요즘 제자들과 함께 하루 열두 시간씩 일월오봉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품은 3월 완성할 예정이다. 갑작스러운 각광이 부담스럽다는 그의 바람은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물론 영광스럽죠. 하지만 해외보다는 국내에서 먼저 사랑받는 작품을 그리는 게 제 꿈이에요.”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김유진 인턴기자 고려대 언론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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