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울고 詩에 웃고… 詩의 힘은 영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문단 대표 서정시인들의 동인 ‘시힘’ 결성 25주년
1980년대 동인 중 유일한 활동 “25주년 넘어 100주년까지 갈 것”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만, 저는 그 말을 바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이 바로 시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시와 함께 여러 세월을 건너온 ‘시힘’ 동인들이 앞으로도 오래 시의 힘이 돼 주시길 바랍니다.”

천양희 시인의 축사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씨어터 제로에서 열린 시동인 ‘시힘’의 25주년 기념식. 1984년에 결성된 이후 사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모임을 축하하기 위해 동인들과 동료 시인, 독자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시힘이 결성된 시절은 주요 문예지들이 폐간되면서 시를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사라졌던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 때였다. 당시 ‘시운동’ ‘오월시’ ‘시와경제’ 등 다양한 동인지가 생겨났고 무크지 스타일의 동인지도 많이 발행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시힘뿐이다. 1기 동인 고운기 김경미 김백겸 박철 안도현 시인을 비롯해 2기 김선우 나희덕 문태준 박형준 이병률, 3기 김성규 휘민 시인 등 한국 문단의 대표 서정 시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동인들의 시낭송과 시인들의 주량에 대한 만담, 동영상이나 노래 등 다른 장르로 재해석한 시를 선보이면서 다채롭게 진행됐다. 다른 문학행사와 달리 중고교생 독자들이 시인들에게 몰려가 시집에 사인을 받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회를 맡은 고운기 시인은 “시힘 동인 중 정일근 안도현 나희덕 시인의 작품이 국정교과서에 소개돼 있다. 그 덕에 젊은 친구들을 알게 된다는 것이 참 좋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이후 문단에 시장 논리가 확산되면서 시인들의 사회참여적 역할이나 실험적인 문학운동이 약해졌고 동인활동 시대도 저물기 시작했다. 이런 시기에 25주년을 맞은 시힘은 100주년까지를 기대하고 있다. 박형준 시인은 “서로의 시 세계에 대한 격려와 느슨한 유대가 동인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이 시대에 ‘동인’이란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대한 질문이 많습니다. 물론 시는 혼자 쓰는 것이지만 크게는 시대와 삶을 함께 써나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동인 활동 자체가 하나의 목소리가 되고, 세계나 독자와 호흡하는 소통의 고리가 될 수 있는 것이죠.”(박형준 시인)

최근 흘러나오는 서정시 위기론에 대한 시인들의 생각도 확고했다. 시힘의 원년 결성자인 김백겸 시인은 “2000년 동안 서정시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시대에 맞게 자연 서정, 농촌 서정, 도시 서정으로 옷을 갈아입는 것일 뿐 결코 서정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후배 시인도 자리를 함께했다. 실험시를 주로 쓰는 젊은 시인들의 시 동인 ‘불편’에서 활동 중인 김근 시인은 “시힘 선배들의 시를 읽으며 습작기를 보낸 후배 시인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라며 “한국문학사의 사반세기를 함께하며 시단을 받쳐온 선배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