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함재봉 박사가 본 ‘쇠고기 시위’

  • 입력 2009년 3월 19일 02시 53분


“엽기적-자극적 방송보도 집회 촉발

광우병 괴담 통해 전염병처럼 확산”

“‘앉은뱅이 소’ 방송 장면에 10대들 민감 반응

386세대가 먹을거리 문제를 정치적 이슈화

불법행위 처벌 거의 안돼 부담없이 시위 참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확산된 것은 경찰의 시위진압이 억제효과가 없고, 불법 행위에 대한 불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함재봉 박사(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6일 발간된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의 치안정책리뷰 9호에 ‘밈(meme·따라하기) 이론으로 본 한국의 촛불시위’라는 글을 실었다.

함 박사는 이 글에서 “지난해 쇠고기 반대 시위는 엽기적이라고 할 만큼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은 방송과 이를 통해 생산된 ‘광우병 괴담’을 적극 받아들인 10대 특유의 사회 연결망 구조와 논리가 만들어내고 확산시킨 전염병의 일종”이라고 분석했다.

○ 방송이 선동하고 10대가 먼저 반응

함 박사가 사용한 ‘밈 이론’은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병이 발생하는 것처럼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도 인간의 사고가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는 것.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해당하는 것이 ‘밈’이다.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의 ‘밈’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믿음’이며 그 진원지는 MBC ‘PD수첩’이라는 게 함 박사의 분석이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사이의 결코 간단치 않은 관계를 ‘앉은뱅이 소’ 한 장면으로 단순화했고, 이것이 ‘광우병 밈’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촛불시위는 방송이 제공한 ‘광우병 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10대와 20대가 촉발시켰다. 또 다음 아고라는 양질의 토론보다는 같은 성향의 사람들끼리 ‘결사(結社)’를 간편하게 해주는 도구였다고 지적했다.

10, 20대 사이에서는 먹을거리 문제가 관심사였지만 386세대가 정치적 문제로 변질시켰고, 30, 40대가 주도한 시위는 폭력적, 반정부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는 것.

함 박사는 “한국이 미국에 종속적인 위치에 있다는 386세대들의 세계관과 한국 사회 주류층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이 합쳐지면서 쇠고기 수입문제가 대미 종속과 계층 간 정치적 문제로 변질됐다”고 평가했다.

○ 불법 시위 참여 대가 너무 적다

함 박사는 한국에서는 시위 참여에 따르는 유·무형의 비용이 극히 낮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시위에 나온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 도심은 대중교통이 편리한 데다 야간에도 시위에 참여할 수 있어 직장인들이 생업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며, 불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지불해야 할 법적 불이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시위가 폭력성을 띠면서 시위 참가 인원이 갑자기 쇠퇴하자 ‘역(逆) 밴드왜건’ 현상(남들이 이탈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이탈하는 현상)에 의해 일부 급진세력만 남고 나머지는 시위에서 일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함 박사는 “불법 시위에 참가해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기대를 깨야 한다”며 “정부는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과도한 정치적,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집회문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동아닷컴 온라인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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