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육지인 마음 잇는 다리 되길”

  • 입력 2009년 3월 4일 02시 54분


■ 소록대교 개통 ‘8년 산증인’ 사진사 이남철 씨

“한센인의 꿈” 2001년 착공부터 카메라 담아

“이 연륙교가 차별과 편견 모두 거둬갔으면”

작은 사슴을 닮은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小鹿島). 한때 ‘천형(天刑)의 땅’으로 불렸던 이 섬에는 한센인 620여 명이 살고 있다.

뭍에서 고작 600m, 배로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한센인에게 섬 밖 세상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섬은 매일 오후 6시 뱃길이 끊기면 세상과 단절됐다. 그리운 가족이 있는 곳, 사람 냄새가 물씬한 육지가 바로 코앞이었지만 애써 마음의 문을 닫아야 했다.

‘그들만의 섬’에 갇혀 한(恨)과 눈물로 살아온 한센인들.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다리 하나 놓이는 게 소원이었던 이들의 꿈이 마침내 이뤄졌다.

○ 93년 만에 세상과 소통하다

2일 소록도 육지 길이 열렸다. 소록도 사람들이 단절된 세상과 소통하는 날이었다. 1916년 강제 격리 수용된 지 93년 만에 걸어서 뭍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2001년 6월 착공된 소록대교는 다리(1160m)와 연결도로 구간 등을 포함해 총연장 3460m로 1652억 원이 투입됐다. 12개 교각에, 물살이 가장 빠른 중앙 부분 주탑(主塔) 2개를 케이블로 연결한 현수교 형태다.

다리는 2007년 9월 완공됐으나 연결도로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그동안 명절 연휴에만 임시 통행이 허용됐다.

“이 다리가 차별과 편견을 모두 거둬 갔으면 좋겠어요.”

소록도에 사는 이남철 씨(60·사진)는 연륙교의 산증인이다. 착공 때부터 지금까지 8년 넘게 다리가 세워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소록도 지킴이’라는 인터넷 카페(cafe.daum.net/sorokchurch)에 올린 다리 사진은 300장이 넘는다.

전남 함평군이 고향인 그는 1966년 아버지 손에 끌려 소록도에 왔다. 아버지는 ‘함께 살게 해달라’며 매달리는 17세 소년의 손을 뿌리친 채 섬을 떠났다.

소록도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같은 처지의 정월선 씨(54)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사진에 취미를 붙이면서 누구보다도 소록도를 사랑하게 됐다.

○ 소록도 알리는 사진사

이 씨는 다리 공사현장을 일주일에 한두 차례 찾았다. 처음에는 공사 관계자들이 카메라를 메고 왔다 갔다 하는 이 씨를 수상히 여겨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시공사 측은 “다리가 세워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이 씨를 막을 순 없었다.

그는 소록도의 사계절, 소록도를 찾아 봉사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전하기도 한다. 지난해엔 국립소록도병원의 배려로 ‘소록도를 사진 속에’라는 주제로 동료 한센인, 병원 직원과 함께 생애 첫 사진전을 열었다.

‘소록도 희망 전도사’인 이 씨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다. 소록도와 한센인의 삶을 담은 시청각 자료를 만들어 섬을 찾는 자원봉사자나 관광객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제 다리가 놓였으니 마름모꼴의 다리 주탑처럼 육지와 섬사람이 두 손을 모아 하나가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소록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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