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피천득 빈소 각계 조문 줄이어

  • 입력 2007년 5월 27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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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밤 별세한 수필가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를 애도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은 27일에도 끊이지 않았다.

이날 낮 12시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소설가 박완서(76) 씨는 "피 선생님은 진선미 뿐 아니라 단순함까지 겸비한 범상한 아름다움을 추구하셨다"면서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 분이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서로의 작품을 읽으며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는 박 씨는 특히 2001년 서울 중구 예장동에 있는 '문학의집·ㆍ서울'에서 초청 강연을 할 때 고인이 불쑥 찾아온 일을 떠올렸다.

박 씨는 "오직 나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온 것이 무척 고마웠다"며 "강연이 끝난 뒤 계단을 내려가면서 본 피 선생님의 작은 체구에서는 모든 허물을 훌훌 털어버린 그런 '가벼움'을 느꼈었다"고 회고했다.

박 씨는 "선생은 항상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참된 것, 정직한 것, 선한 것을 추구했다"며 "그분이 종교를 갖게 된 것도 종교의 아름다운 면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문학 세계에 대해서는 "남긴 작품이 비록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두고두고 읽고 또 읽을 수 있는 마음을 위로하고 정화해 주는 문학"이라고 평했다.

김우창(70) 고려대 명예교수는 "훌륭한 글을 통해 맑고 행복하게 사신 분"이라며 특히 "정치를 해야 성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보통 사람'으로 성공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김 씨가 고인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0년 대 서울대에서다. 당시 김 교수는 문리대 교수로, 고인은 사범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김 씨는 "연배로 따질 때 제자뻘이지만 제자가 되지는 못했다"며 "그러나 스스로 피 선생님의 '명예제자' 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60년대 후반 자신이 하버드대에 머물고 있을 때 고인이 학교 기숙사에 불쑥 찾아왔던 일을 떠올렸다.

김 교수는 "선생은 어떤 자리에 얽매이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분이셨다"며 "한번은 미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에 와 계시던 선생님이 밤중에 혼자 버스를 타고 하버드대 기숙사로 나를 찾아오셔서 함께 밤을 지낸 일이 있다"고 회고했다.

이날 오후 빈소를 찾은 정운찬(60) 전 서울대총장은 "총장 재직 시절 명예교수님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바로 제 옆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잘 했다. 앞으로 더욱 잘하라'며 격려해주기도 했다"면서 "이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정 전 총장은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얼마 전 나의 대선 불출마 소식을 전해듣고 선생께서 만세까지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생 시절 고인에게 수학한 시인 황동규(69) 씨도 26일 오후 부인 고정자 씨와 함께 빈소를 방문해 "글도 아름답고 인간도 아름답다.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있는 분이셨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분이 가셨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황 씨는 "이제 세배 드릴 분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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