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金 딴 뒤의 허탈함이 최대 난적” 이원희 선수

  • 입력 2006년 12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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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가 7일 카타르 도하의 한국식당에서 환희의 순간을 되새기며 밝은 표정으로 당시 경기 상황을 말하고 있다. 도하=강병기  기자
‘유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가 7일 카타르 도하의 한국식당에서 환희의 순간을 되새기며 밝은 표정으로 당시 경기 상황을 말하고 있다. 도하=강병기 기자
매트 위에서 숱한 승부를 겪은 이원희의 손가락 마디는 유달리 굵다. 도하=강병기  기자
매트 위에서 숱한 승부를 겪은 이원희의 손가락 마디는 유달리 굵다. 도하=강병기 기자
이원희(25·KRA)는 ‘한판승의 사나이’로 불린다. 2002년 오스트리아 오픈대회부터 12경기 연속 한판승을 기록하며 얻은 별명이다. 도하 아시아경기에서도 다섯 경기 중 네 경기를 한판으로 따냈다. 이런 그에게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

‘그랜드슬램의 사나이’. 이원희는 5일 유도 남자 73kg급 결승에서 다카마쓰 마사히로(일본)를 전매특허인 빗당겨치기 한판으로 메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3년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이어 아시아경기까지 석권한 그는 한국 유도 사상 처음으로 4개 메이저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원희를 7일(한국 시간) 카타르 도하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악수를 청했다. 마치 돌덩이를 잡은 것 같다. 사진 찍을 곳으로 안내하기 위해 어깨를 감쌌다. 터질 것 같은 근육이 느껴졌다. ‘몸짱’이라 좋겠다고 하니 말없이 씩 웃는다.

이원희는 “올림픽 우승이 전부인 줄만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고 난 뒤의 공허함이란…. 더는 열정이 생기지 않았단다. 아테네에서 돌아온 지 3개월 뒤 대표선발전에서 4년 후배 김재범에게 져 세계선수권에는 출전조차 못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을 너무 게을리 했거든요. 그 뒤로 재범이에게 몇 차례 더 지면서 오기가 생겼어요. 재범이가 아주 좋은 자극제가 된 거죠.”

한물갔다는 얘기도 들었고 어린 나이에 자만에 빠졌다는 얘기도 들었다. 다시 이를 악물었고 결국 7월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김재범을 누르고 종합점수에서 앞서 도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이원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경기 소감은 늘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시작한다. 그래서 힘든 운동을 하면서도 술과 담배는 입에 대 본 적이 없다. 유도 말고는 좋아하는 스포츠도 없다. 스포츠 뉴스조차 잘 보지 않는다.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자신이 세운 국내 최다 연승 기록(48연승)을 깨는 것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이 선수로서의 목표라고 했다. 그 다음엔….

“지도자가 되는 건 당연한 거죠. 차근차근 이뤄나갈 거예요. 한 단계씩 올라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도 해 보고 싶고 그 다음도 있는데 아직 그건….”

유도는 평소에는 비인기종목, 큰 대회 때는 ‘반짝 인기’ 종목이다. 평소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뭐 달리 말할 게 있을까요. 그냥 큰 대회에서라도 관심 가져 주시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도하=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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