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왕 말년 지킨 13년 의리왕 있었다

  • 입력 200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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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일 씨(오른쪽)와 병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생전의 김일 씨(오른쪽)와 병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박치기왕’ 김일 씨가 영면에 들어간 26일 낮. 주치의의 사망 선고에 가족이 오열을 하는 가운데 한 중년 남성이 고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선생님, 이제 편히 가십시오.”

박준영(47) 을지병원 이사장은 고인의 마지막 13년을 함께했던 ‘인생의 동지’였다.

1994년 1월 박 이사장은 지인에게서 “김 선생이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요양원에서 외롭게 투병 중”이란 얘기를 들었다. 그 길로 그는 의사와 간호사를 대동하고 일본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최고의 영웅이 다른 곳도 아닌 일본에서 비참하게 계신다는데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어요.”

현지에 가보니 김 씨는 하지정맥류로 왼다리가 배 이상 부어 있었고 목 디스크를 앓는 데다 의식도 멍한 상태였다.

“‘제가 모실 테니 같이 가십시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처음에는 못 믿으시더라고요. ‘저는 한번 약속하면 지키는 사람이니까 가시죠’ 라고 설득했죠.”

아무 연고도 없고 누구도 돌보려 하지 않던 고인에 대한 박 이사장의 정성은 지극했다. 병실 하나를 살림방으로 내주었고 당뇨병 고혈압 하지부종 등 각종 병을 무료로 치료했다. 생활비도 보탰고 일본 여행 경비도 지원했다.

덕분에 김 씨는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했고 후배 양성 및 레슬링 재건사업에 활발히 참여하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고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사나이의 의리란 게 무엇인지 보여 주셨죠. 일제 강점기에 선생님이 키우던 개를 일본 군인이 빼앗으려 하자 차라리 빼앗기느니 주는 게 낫겠다 싶어 기증을 했는데 그 죄책감을 평생 잊지 못하고는 고향에 ‘개 동상’을 세워 주기도 했어요.”

박 이사장은 고인은 어린아이처럼 마냥 순진하고 천진했다고 회고한다.

“그분이 워낙 유명하니까 돈이 많은 줄 알고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가 그런 사람들을 왜 고발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 사람은 오죽하면 나한테 사기를 치겠느냐’며 허허 웃으셨어요.”

박 이사장은 김 씨가 돌아가시던 26일 밤 씁쓸한 마음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한 달 전쯤 선생님이 예전에 경기에서 박치기하는 모습의 사진 두 장을 크게 확대해 주시더라고요.”

이제 그 사진은 박 이사장의 가보가 됐다.

“국가적으로 국민의 자존심을 살려 준 분들이 말년에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원로 체육인 마을’ 같은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면 좋겠어요. 비록 제가 모셨지만 천하의 김일 선수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았다는 것이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전설의 프로레슬러 ‘박치기 왕’ 故 김일 씨 빈소 표정

전설의 프로레슬러 ‘박치기 왕’ 故 김일 씨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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