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표기법 지적 최성철씨 "잘못된 일본어흔적 벗어나야"

  • 입력 2006년 10월 8일 16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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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연구회의 최성철씨
한글연구회의 최성철씨
마쿠도나루도, 헤리코푸타….

맥도날드와 헬리콥터의 일본어 발음이다. 우리는 이런 일본인의 발음에 우월감을 느낀다. 그러나 정작 귀신의 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는 한글의 표기법이 이 일본어의 영향으로 절름발이 신세가 된 것은 모르고 있다.

최성철(69) 씨는 인터넷에서 '뿌리깊은나무'라는 아이디로 한글의 잠재력을 막고 있는 현행 외래어표기법을 바꿔야한다고 주장하는 한글옹호론자다.

"벤또, 다꽝 등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어를 추방하자는 운동에는 열심이면서도 정작 우리말어법에 스며든 일본어의 흔적은 모르고 있어요."

최 씨는 10여 년 전부터 한글학회와 국립국어원, 정당과 청와대를 비롯해 언론사 인터넷 토론마당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글표기법의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일간지와 방송사 기자들에게 '잘못된 틀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제목으로 현행 외래어표기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e메일을 꾸준히 보내고 있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은 1941년 조선어학회에서 마련한 안을 1988년 문교부 확정고시를 통해 확립한 것으로 제정된 지 65년이 됐다. 그런 표기법에 문제를 제기한 그는 어떤 사람일까. 기자는 패기만만한 젊은 국어학자를 생각했다. 그러나 최 씨는 내년 칠순을 맞는 노인으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이였다.

"1986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는데 뒤늦게 영어발음을 배우려니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같이 영어를 배우던 이란인이 영어발음을 이란어로 표기한 영어사전을 쓰는 것을 보고 한글 발음 기호가 달린 영어사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한글공부를 시작한 그는 모든 영어발음을 한글로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일제강점기 만들어지면서 일본식 외래어표기법의 영향을 받아 한글의 무한한 능력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예를 들어 현행 외래어표기법 제1장 제3항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라고 제한한 것과 제4항의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은 받침 표기가 없고 된소리발음이 드문 일본식 외래어발음을 흉내 낸 결과라는 것. 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는 규정도 일제강점기 국내 이식된 어설픈 일본식 외국어발음을 우리말로 둔갑시킨 독소조항이라는 주장이다.

그 결과 독일어 arbeit가 '알바¤'라는 정확한 표기를 놔두고 일본어 표기 '아루바이토'를 흉내 낸 '아르바이트'로 굳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뉴즈' 또는 '누즈'로 표기돼야 할 news가 '뉴스'가 된 것도 일본식 발음의 영향이다.

최 씨는 이런 차이가 국어에 외래어 범람을 낳은 결정적 원인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외래어규정에선 외래어를 외국어로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에선 외래어를 아예 우리말로 규정합니다. 일본에선 외래어에 영주권을 내줬다면 한국에선 아예 국적취득권을 준 셈이에요. 이렇게 외국에서 빌린 말을 같은 국어로 대접해주다보니 그에 해당하는 국어를 만들어내기 보다 외국어를 바로 국어 어휘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낳은 겁니다."

최 씨는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1998년 '한글은 일본의 언어식민지다'라는 책을 냈다. 그러나최 씨는 이 책을 일주일만에 모두 회수했다.

"영어의 [r]과 [l] 발음의 차이를 ㄹ과 ㄹㄹ로 구별해 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 띄웠는데 누군가 [f] [v] [l] [ð] [¤]의 국제음성기호를 실제 [ㅍㅎ] [ㅂㅎ] [ㄹㄹ] [ㄷㅅ] [ㅌㅅ]로 표기한 구한말의 옛 문서를 보내주더군요. 그때까지 혼자 궁리하던 것이 훈민정음 해례에 다 나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워 책을 회수했습니다."

최 씨는 다시 독학으로 훈민정음을 공부한 결과 현행 한글 24자가 아니라 훈민정음의 28자로 '귀신의 소리까지 흉내 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훈민정음 해례에 따르면 영어 v발음은 ㅸ, f발음은 ㆄ, sh발음은 ㅿ, r발음은 ㄹ, l발음은 ㄹㄹ에 해당합니다. 또 훈민정음에는 첫소리에 자음 17개, 가운데소리에 모음 11개, 다시 끝소리에 17개의 자음을 쓰게 되어 있는데 필요하면 이들 각각 3개까지 나란히 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수학의 수열과 조합의 공식을 이에 적용하면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 발음은 천문학적 숫자에 이릅니다. 겨우 100여개 발음밖에 담을 수 없는 일본의 가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고 중국 한자의 수에 몇 천배에 해당하는 소리글자들이 훈민정음이라는 소리의 보물창고에 들어 있는 셈이죠."

최 씨는 현행 우리말표기법에서 기본 자모 24자에 쌍자음 등을 포함해 40개 자모로 제한한 것도 한글의 세계화에 역행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국제음성학회에서 한글을 국제음성기호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음소문자인 한글로서 수많은 외국어를 다 표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소리의 보물창고인 한글의 본고장인 한국에선 어색한 외래어발음표기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스스로의 엄청난 잠재력을 썩히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위해 국어연구자가 아닌 순수한글연구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국어연구자가 외래어를 대신할 우리말을 만들어내는 우리말지킴이라면 한글연구자는 우리말에 없는 발음의 소릿값을 어떻게 줄 것인가를 연구하는 '우리말넓힘이'가 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본보기로 그는 영어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군사용어사전'을 완성했다.

이제 한글을 수성이 아니라 확장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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