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데나워재단 린셰 전 총재가 말하는 한반도 정세

  • 입력 2006년 9월 12일 1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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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북한 이익대표부 직원들을 만나서 '세계화 시대'인데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면 안 된다고 충고했더니 '우리도 세계화에 발맞춰 외부세계의 원조를 받고 있다'고 대답하더군요."

독일 집권 기민당이 세운 비영리재단인 '콘라트 아데나워재단(KAS)'의 귄터 린셰 전 총재는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 독일 하원의원(1965~72)과 유럽의회 의원(1979~99)을 지내는 동안 유럽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5차례나 방문했고 1998년 유럽의회 의원들의 북한 방문을 주도하기도 했다.

KAS의 후원으로 7~10일 서울서 열린 제4차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린셰 전 총재를 10일 만났다. 그는 독일 통일의 경험에 비춰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들려줬다.

-한국과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독일에서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사민당 정권 당시 미국과의 관계가 불편했으나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집권 후 다시 미국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에게도 미국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다. 슈뢰더 정권은 프랑스,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에 대항하려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의 관계만 훼손한 무모한 정책이었다. 한-미 관계가 평등한 파트너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똑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북한 인권과 대북 경제 지원을 둘러싼 논란이 많다.

"옛 동독 인권 상황도 심각했다. 당시 서독 정부는 '몸값'을 주고 동독의 정치범들을 데려왔다. 동독 당국은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무고한 시민도 잡아들였다. 서독으로 석방한 정치범 사이에 간첩도 섞어 보냈다. 하지만 서독 정부는 모른체하고 인권을 미끼로 한 터무니없는 요청도 들어줬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력은 옛 서독과 차이가 있고 무작정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는 힘든 상황이다.

"알다시피 우리 재단의 명칭은 콘라트 아데나워 전 총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독일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와 긴 호흡'이라고 강조했다. 때로는 '통일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물론 우리도 실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동독 지도자들이 '경제가 좋다'고 큰소리를 쳤고, 우리는 이를 믿고 동독 경제 상황을 낙관했다. 하지만 막상 통일을 하고보니 동독 경제는 훨씬 나빴고 통일비용이 예상보다 너무 많이 들었다."

-KAS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이달 말 독일로 초청해 메르켈 총리와의 면담을 주선한 배경은….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 우리는 세계 각국에 사무소를 두고 있지만 현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소국에 파견된 우리 직원이 대통령과 친해져 정치적 조언을 해 개헌을 하게 만든 일이 있다. 이 사실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보도해 결국 이 직원을 소환했다. 이번 경우 박 대표와 유럽의 각계 인사들을 만나게 해주려는 것뿐이다. 나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교수 시절 당시 야당 의원이던 메르켈 총리에게 소개시켜 준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최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2위로 나란히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한국 정당들이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아데나워 재단을 모델로 꼽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정당이 세운 재단이지만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아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교육하는 것이 가장 큰 활동이다. 저개발국의 정치발전과 빈곤퇴치도 지원한다. 장학금 지원도 하는데 우리 장학금을 받아 독일에서 유학한 한국인이 150여명이다. 물론 정책연구소(think tank)로서의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다."

-KAS는 세계 각국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사업도 해왔는데, 한국의 민주화 과정과 민주주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성과가 부진하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발전한 나라로 필리핀과 태국 등을 꼽지만 한국이 단연 민주화 선도 국가다."

-북한 관련 사업도 하는가.

"아시아 각국의 법학교수를 초청해서 세미나를 여는데 지난해 방콕에서 남북한 법학자의 만남을 주선했다. 매년 북한 기자들을 독일로 초청해 수 주 동안 교육시킨다. 내년부터 북한 법대생의 독일 연수를 추진 중이다. 우리는 이런 작은 만남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고 본다."

-그동안 만난 한국 인사 중 누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해 정계를 은퇴하고 유럽에 온 김대중 전 대통령과 3시간 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독일 통일의 성공요인과 한국과 독일 상황의 차이점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지적했다. 동독인들은 서독 TV를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동독 정부는 노동 능력이 없는 노인들의 서독 방문을 허용했다. 이들을 서독에 떠안기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동서독을 왕래한 노인들을 통해 서독의 생생한 현실이 동독으로 전해졌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그밖에 한국이 참고로 삼아야 할 점이나 충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동독은 연방제 통일을 제안했으나 결국 서독으로 흡수됐다. 서독 주민들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절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경제력과 인구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1대1 통합도 안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통일은) 강한 쪽이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 '통일독일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주변국들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아데나워 전 총리는 늘 '우리가 옳다면 언젠가는 승리한다'고 말했다. 준비하다보면 언젠가는 북한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귄터 린셰 박사

▲1930년 독일 함 출생

▲1951~59년 뮌스터대 쾰른대 미국 콜로라도대 수학(정치학 박사)

▲1965~72년 독일 하원의원

▲1979~99년 유럽의회 의원

▲1989~99년 유럽의회 기민-기사연합 대표

▲1968~현재 콘라트아데나워재단 이사

▲1995~2001년 콘라트아데나워재단 총재

:아데나워재단: 독일 기민당이 세운 비영리 공익재단으로 사민당의 에버트 재단과 쌍벽을 이룬다. 2차 대전 후 '라인강의 기적'을 만든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초대 총리의 이름을 따서 1964년 설립됐다. 21명의 현 이사진에는 메르켈 총리와 헬무트 콜 전 총리가 포함돼 있다. 민주주의 교육과 장학금 지원, 정책 연구, 국제 교류 사업 등을 벌인다. 120개국에 해외사무소가 있으며 한국사무소는 1978년에 문을 열었다.

김기현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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