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化汀평화재단]축구는 모든 갈등 뛰어넘는 ‘평화의 언어’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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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다. 분쟁을 겪고 있는 이라크에서 한국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을 차는 어린이들의 웃음이 해맑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축구는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다. 분쟁을 겪고 있는 이라크에서 한국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을 차는 어린이들의 웃음이 해맑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축구와 정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축구와 국제평화: 2002 한일 월드컵 재평가 및 2006 독일 월드컵 전망’이란 국제학술회의(한국정치학회 대한축구협회 공동 주최,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 후원)에 참석한 패널들은 “축구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정치가 못하는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기조연설에 이어 랍 휴스 잉글랜드 축구 칼럼니스트(인터내셔녈 헤럴드 트리뷴), 김석수 정치학 박사, 김우상 연세대 교수, 고하리 스스무 일본 시즈오카대 교수, 쑤창허 중국 푸단대 교수, 리처드 줄리아노티 잉글랜드 애버딘대 교수, 이성형 이화여대 교수, 피터 벨라판 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 순서로 이뤄진 주제 발표를 지상 중계한다.

이날 학술회의는 △축구와 정치 △축구와 동아시아 평화 △월드컵과 국제협력이란 세 가지 주제로 열렸다. 박희태 국회부의장,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용호 한국정치학회 회장, 정정길 울산대 총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정몽준 회장은 기조연설에서 “국제 사회에는 크게 안보와 무역, 문화교류란 세 가지 분야가 있다. 이 가운데 국가 간 문화교류의 중심을 이루는 게 스포츠다. 그중에서도 축구가 차지하는 힘은 크다”며 “2002 월드컵을 통해 우리 한국인들은 자신도 몰랐던 에너지를 발견했듯이 지구촌 시민들도 축구를 통해 ‘우리 모두는 축구를 사랑하는 지구촌의 동지’라는 따뜻한 인류애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제1부 축구와 정치

▽랍 휴스=축구는 인간에게 알려진 모든 경계를 넘나든다. 하지만 정치가들은 규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다. 40년간 축구를 취재하며 축구야말로 가장 위대한 세계 공통어라는 것을 실감했다.

축구는 선도, 악도 될 수 있다. 영향력이 큰 만큼 오용 가능성도 크다. 독일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축구를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이용했다. 이디 아민 우간다 군사 정치가도 축구를 대량 학살을 위한 가면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1993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는 10개 아시아 국가가 참가하는 1994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이 열려 전쟁의 공포 속에서 희망을 찾기도 했다.

축구는 우리에게 무한한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확고한 정치적인 의지가 없다면 결코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없고, 심지어 인간이 축구를 이용하려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결국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김석수=축구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싶다. 미시적인 입장에선 비판할 것도 많지만 거시적인 입장에서 축구는 희망의 매개체다.

축구는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축구는 사회의 여러 계급이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성을 드러낼 수 있다. 여가를 보내고 다른 사회, 국가, 인종, 문화, 민족을 접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다.

축구는 종교만큼이나 깊은 뿌리를 갖고 있고 국가와 사회의 공동체 조직의 일부로 기능해 왔다. 축구는 암울한 시기에 스스로 문화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펼칠 수 있는 장이었고 답답하고 불쾌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단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 왔다.

축구가 전 세계 소외된 지역이나 국가, 민족에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는 될 수 없지만 일시적인 고통과 괴로움을 잊을 수 있고 때로는 단합과 화해, 평화와 자유, 이해와 협력을 통한 미래의 희망을 담보할 수 있는 희망의 매개체로서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축구를 만들었다. 인간은 축구를 통해서 야만에서 신사(문명)로 진화되었다.

제2부 축구와 동아시아 평화

▽김우상=강대국 사이에 있는 한국은 하드 파워가 아니라 스포츠와 문화 등 소프트 파워를 통해 동북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일본인들이 한국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공동 개최가 아시아 평화에 미친 역할을 깨달았다.

한국의 동북아 지역에서 평화 번영을 위한 외교의 핵심은 ‘중추적 동반자 외교’이며 이를 위해 주목해야 할 분야가 스포츠 외교다. 남북 간 평화통일뿐 아니라 한중일 동북아공동체 외교를 위해서도 스포츠 교류는 중요하다. 한중일 축구리그를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고하리 스스무=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한일 간의 상호 이해 정도는 무척 높아졌다. 공동 개최 결정 이후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친근감은 1995년 38%에서 대회 직후 77%까지 올랐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친근감도 26%에서 42%까지 높아졌다.

한일 관계가 정치 외교적으로는 악화되고 있지만 인적 문화적으로는 현재 사상 최고의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일본에 대한 ‘조용한 외교’를 포기하더라도 문화 스포츠 교류를 멈춰서는 안 된다. 한일 양국이 공동 운영하는 TV 채널을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독일과 프랑스 양국은 이미 ‘ARTE’라는 문화 스포츠 전문 채널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쑤창허=중국의 축구 민족주의는 특이한 형태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의 선전을 중국인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과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컵 결승전에서 중국이 일본에 패하자 팬들이 소요를 일으킨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중국의 축구 문화가 유럽축구를 중시하는 가치에 지배되고 있고 스포츠가 정치로부터 왜곡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때 중국의 TV 해설가는 공공연히 “한국이 심판을 매수했다”고 방송했고 이는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 매스미디어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여전히 한중일 3국 국민은 서로에게 잘못된 오해를 가지고 있다. 상호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화합하지 않으면 축구 문화 역시 동북아에서 실추되고 말 것이다.

제3부 월드컵과 국제협력

▽리처드 줄리아노티=축구는 세계화의 상징이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통해 지구촌은 하나가 된다. 개최국은 경제적 이득을 얻고 고유의 문화를 세계에 보여 준다. 2006 독일 월드컵만 해도 연인원 400억 명이 지켜본다.

물론 이런 월드컵의 지나친 세계화 때문에 각 국가는 문화적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문화를 자랑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월드컵이 지나친 경쟁 탓에 훌리건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등 부작용도 많다. 상업주의가 횡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폭력을 근절하고 상업주의를 최대한 막는다면 월드컵은 지구촌 화합에 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축구를 통해 인종차별을 없애고 난민, 이민 문제 등을 해결하고 세계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형=전통적으로 월드컵은 각국의 축구 스타일과 문화를 보여 주는 경연장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가 유럽을 거쳐 세계 축구에 확산된 이래로 예술 축구는 점차 사라졌고 스타일도 동질화됐다. 아시아 축구도 이제 유럽 축구를 본받아 ‘글로벌 스타’로 바뀌었다. 또 이기는 축구에 매달리다 보니 수비에 치중해 골도 많이 안 나고 재미없어졌다. 하지만 축구의 세계화로 정체성이 완전히 해체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팀 컬러에서 잡종화된 스타일 내에서의 편차가 있다. 사람들은 경기를 보는 90분 동안 모두 애국자가 된다. 동북아 지역리그가 탄생한다면 민족주의의 충돌로 불화를 겪고 있는 한중일 삼국의 적대감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매개로 해소되고 평화와 공동 번영의 계기로 승화될 것이다.

▽피터 벨라판=역사상 첫 번째 공동개최인 2002 한일 월드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축구는 207개 회원국이 참여해 즐기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한국과 일본이 증명했듯이 다양한 민족 간의 화합을 이뤄준다.

축구는 생명력의 마법을 가지고 있다. 축구를 하는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 좋은 시민을 만들어 국제평화에 기여한다. 하지만 확실한 정치적 확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축구로 이룰 수 있는 게 적을 수 있다. 정치가들도 축구를 통해 국제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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