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속의 검사, “사생활이 없어요”=“우리가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2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6층 박한철(朴漢徹) 3차장실. 전날 발표된 검사장 승진 명단에 포함된 박 차장은 기자들 요청으로 지난 1년간의 소회를 이해인(李海仁) 수녀의 시 한 구절로 대신했다. 여느 때처럼 기자들에게서 열띤 질문 공세를 받은 직후였다.
박 차장은 “지난 1년간 사생활이 전혀 없었고 기자 여러분과 갈등도 많았지만 한분 한분을 성의 있게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30여 명의 기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로 화답했다.
지난 1년간 박 차장은 오전 4시 반이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기자들 전화에 잠을 깼다. 퇴근 이후에도 오전 1시까지 끊임없이 울려대는 휴대전화 벨 소리에 도저히 부인과 같이 잠을 잘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각방을 쓰며 ‘별거’를 했다고 박 차장은 털어놨다.
하루에 150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 날도 있었다. 3차장이 지휘하는 특수 1∼3부와 금융조사부, 마약조직범죄부 등에는 국민의 관심을 끄는 대형 사건 수사가 많기 때문이다.
박 차장뿐 아니라 국가정보원의 도청 사건을 지휘한 황교안(黃敎安) 2차장과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을 지휘한 황희철(黃希哲) 1차장도 비슷한 생활을 했다.
▽선문답(禪問答) 브리핑=대형 사건이 터지면 서울중앙지검 차장과 기자들 사이엔 수사 진행 상황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하나라도 더 얘깃거리를 끌어내기 위한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지지만 언제나 이들은 ‘뜬구름 잡는 듯한’ 대답에 그친다. 수사 상황이 여과 없이 알려지면 수사에 차질이 빚어지고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자들에게서 “너무 얘기를 안 해준다”는 항의를 수없이 받는다. 그러나 수사팀은 “수사 내용을 너무 많이 알려 준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차 때문에 늘 언론과도 긴장 관계가 계속됐다. 박 차장은 언론과 검찰의 관계를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 비유했다. 그는 “살아온 환경과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차장은 동기생 중 실력을 인정받은 우수한 검사들이 맡아 왔다. 이들은 대부분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6일자로 황희철 차장은 법무부 정책홍보관리실장, 박 차장은 대구고검 차장으로 발령났다. 최근 10년간 서울중앙지검 차장을 지낸 35명 중 ‘검사의 별’로 불리는 검사장에 승진하지 못한 검사는 3명에 불과했다.
송광수(宋光洙) 전 검찰총장과 정상명(鄭相明) 현 총장은 2차장을 지냈다. 특별수사로 이름이 높았던 심재륜(沈在淪) 전 대구고검장은 3차장 출신이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