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재활원 콘서트' 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우광혁 교수

  • 입력 2002년 12월 1일 17시 37분


정신지체장애인 재활원 콘서트에서 사용할 산타클로스 옷을 미리 입고 연주연습을 하는 우광혁 교수. - 권주훈기자
정신지체장애인 재활원 콘서트에서 사용할 산타클로스 옷을 미리 입고 연주연습을 하는 우광혁 교수. - 권주훈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우광혁(禹光赫·41) 교수. 우 교수와 그의 친구, 제자 음악가들의 모임인 ‘빛소리 친구들’의 겨울 콘서트 투어는 올해 12월에도 이어진다.

그들의 콘서트는 여느 음악가들의 콘서트와는 다르다. 레퍼토리는 오페라 아리아나 가곡이 아닌 ‘징글벨’ 등 캐럴과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같은 동요다. 무대복장은 턱시도가 아닌 산타 할아버지의 붉은 외투와 방울 달린 모자, 무대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재활원이다.

우 교수는 클래식음악 프로그램의 사회자로도 활동했던 한국 무용음악계의 권위자다. 10월 부산아시아경기대회의 주제가와 6월 프랑스 리옹에서 공연된 무용 ‘유랑자’(남정호 안무)의 작사 작곡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듬해인 1996년 서울시립대 강사로 일하며 제자들과 함께 재활원 콘서트를 시작했어요. 요즘 세상에 음악을 들으려면 돈과 시간, 그리고 건강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세 가지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을 찾다보니 바로 장애인들이었습니다.”

강원도 산골이나 낙도의 재활원에서 펼쳐지는 공연에서 그는 ‘교수님’이 아닌 ‘뽀식이 오빠’가 된다. 거구의 우 교수는 ‘그대로 멈춰라’ 등 흥겨운 동요를 부르며 유치원 교사처럼 율동을 한다. 우 교수와 제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만족시키기 힘든 관객들을 상대로 음악을 하는 셈이다.

“박수받기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한 번도 입을 뗀 적이 없는 자폐증 어린이가 흥에 겨워 마이크를 잡고 처음 소리를 냈을 때, 어려운 ‘연습’ 끝에 박수를 쳐주는 장애인을 볼 때 정말 음악할 맛이 납니다.”

100여 가지가 넘는 민속악기를 능숙히 다루는 우 교수의 재능이 재활원 콘서트에서는 든든한 재산이 된다. 파리 유학 시절 중고 트럭으로 이삿짐을 날라 번 돈으로 사 모은 세계의 전통 민속악기만 250여 점. 오카리나와 팬플루트를 불고 인도네시아실로폰을 치다가 유대하프를 켜며 장애인 어린이들의 닫혀진 마음의 문을 음악으로 두드린다.

“서울대 음대 81학번 동기생 중에 소프라노의 조수미, 바리톤의 고성현, 테너의 김영환 등 세계적인 성악가나 연주자들이 많아요. 대학 시절부터 ‘스트레스’ 많이 받았지요(웃음).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여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햅쌀밥’이라면 제 음악은 사흘 굶은 이들을 위한 ‘묵은밥’입니다. 제 음악이 더 맛있지 않을까요?”

앰프와 악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 구입한 중고 무쏘 승합차가 2년 만에 7만㎞나 뛰었을 정도니 기름값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최근에는 문화관광부와 농협, 아남전자 등이 도움을 주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올해에는 9일부터 20일까지 수도권의 재활원 5곳을 돌며 콘서트를 할 계획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우 교수는 항상 미안한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결국 장애인들에게 저는 1년에 한번 스쳐가는 ‘재미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재활원에서 그들을 돌보는 꽃 같은 나이의 여선생님들은 한달 월급이 80만원밖에 안 돼요. 이번 공연에서는 이 선생님들에게 노래 ‘사랑하기 때문에’를 바치렵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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