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유학생 전철우씨 "남한생활 10년 사람냄새가 그립다"

  • 입력 1999년 11월 23일 19시 57분


“10년 동안 남보다 열심히 살았고 돈도 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이 ‘정말 내가 꿈꿔 왔던 것인가’를 생각하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군요.”

89년 11월16일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귀순했던 북한 동독유학생 전철우(全哲宇·32)씨. 그로부터 10년 동안 방송인으로, 작가로, 또 40여개의 냉면집을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자본주의에 가장 잘 적응한 귀순자’라는 평을 듣는 전씨지만 정작 스스로는 “귀순생활 10년이 꼭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북한은 못살지요. 하지만 못사는 만큼 서로에게 관심이 많아요. 여기처럼 각박하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어렸을 때부터 절대적인 조직의 권위 속에서 사람을 키우는 만큼 늘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애정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

전씨는 “반대로 자본주의는 ‘돈’때문에 가족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회”라고 평가했다.

전씨가 자본주의에 대해 가장 ‘무섭다’고 느꼈던 것은 “돈 앞에서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씨가 사업에 성공하자 친구들은 “돈을 벌면 사람이 모여든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절대 믿지 말라. 돈을 노리는 사람일수록 친절하니 속아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특히 “결혼하더라도 자식을 낳기 전까지는 부인도 믿어선 안된다”는 충고를 듣고 전씨는 “모골이 송연했다”고 회상했다.

대부분의 탈북 귀순자들이 이 ‘돈에 죽고 사는’ 자본주의의 생리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한다는 것이 전씨의 설명. 전씨는 “내가 만나본 귀순자의 80%가 ‘남한이 지긋지긋하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남한사회를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라고도 하지요. 어떤 귀순자들은 ‘이런 비인간적인 사회와는 절대 통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극단적인 말도 합니다”고 설명했다.

북한 전체를 ‘적’으로 생각하는 일부 남한사람들의 ‘극우적’ 사고에 대해서도 전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전씨는 “한번은 나이 지긋한 한 어르신이 저보고 ‘북한놈들은 무조건 다 싫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북한에서는 ‘남조선의 지배계급이 나쁠 뿐이지 남조선 인민들은 한 민족이며 우리가 해방시켜줘야 한다’고 교육합니다. 우리가 북한보다 못한 생각을 가져서야 되겠습니까”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씨는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나에게 기회를 준 남한에 감사하며 귀순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라면서도 “남한이 좀더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인간적인 자본주의’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희망을 피력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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