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이재묵]‘슬림’ 공약 깨고 커진 대통령실, ‘용와대 정부’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7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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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실장 5수석→3실장 8수석 체제로 확대
美 비서실 523명인데 한국 정원 443명
용산 중심의 돌파구 찾는 것보다 협치를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총선 이후 집권 3년 차를 본격적으로 맞이하는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2년 전 취임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개혁하겠다’며 상징적으로 폐지했던 민정수석실을 부활시켰고, 곧바로 ‘저출생수석실’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재를 상징하는 소위 ‘청와대 정부’를 지양하고자 2년 전 윤 대통령이 후보 공약으로 ‘청와대 조직 슬림화’를 내세웠지만, 취임 2년여 만에 3실장 8수석 체제로 조직이 개편되면 비서실 구조만으로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같은 규모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서실의 확대 개편은 집권 중반부를 맞이하며 대통령실이 일종의 컨트롤타워가 돼 직접 국정 현안을 챙기고 부처 간 정책 조율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 데 따른 고심 끝 결단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직제 개편은 대통령이 직접 공언했던 “부처 위에 군림하며 권력만 독점하는 청와대”라는 비판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대선 공약 파기라는 정치적 부담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대통령실은 2년 전 2실장 5수석 체제로 출범했다가 작년 말 연구 및 정책 역량 강화 등을 명분으로 해 정책실을 신설하는 등 이미 한 차례 직제 개편을 실시한 바 있다. 그리고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비서실 확대 개편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소위 ‘용와대 정부’ 출현에 대한 비판을 따갑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다수의 전문가들이 성공한 대통령에 대한 주문으로 비서실 축소와 행정 부처 중심의 전문화된 국정 운영을 요구했다. 행정 부처와 전문 관료, 그리고 집권 여당을 국정에서 소외시키고 대통령비서실에 과도하게 의존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정책 집행뿐만 아니라 통치 자원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청와대 정부’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 조직 규모 및 인력 축소를 시도했으며, 그러한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론의 정점에 윤 대통령이 존재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실 조직 규모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청사로 이전하는 결단을 보여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양하고 시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대통령실 조직 규모의 지속적 확대 개편을 바라보는 정치권과 일반 국민의 우려는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3년 국회 운영위에 보고된 우리 대통령실 직제에 따르면 비서실의 공무원 정원은 443명이고, 현재 400여 명에 가까운 인력이 용산에서 근무 중이다. 그런데 우리 인구보다 6배 이상 많은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백악관 비서실 인력 규모는 2023년 기준 523명이고, 보수 공화당 정부인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는 374명(2017년)과 412명(2020년) 수준이었다. 미국과 비교해 우리 대통령비서실의 조직과 인력 규모가 너무 과도하게 큰 것은 아닌지, 그리고 반드시 큰 규모를 유지할 명분과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슬림화를 논할 때 단순히 조직이나 인력의 양적 규모에만 주목해서도 안 된다. 혹여 대통령비서실의 실장과 수석에게 과도하게 많은 권한이 부여되고 권력이 집중된 나머지 행정 부처를 이끄는 장차관이나 실무 실·국장들이 대통령실 눈치를 살피느라 정책 의지나 역량이 위축되는 부작용은 없는가에 대해서도 적절한 진단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극한의 대결 정치가 계속되고, 극단적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 입법부 설득을 통한 국정 과제의 실현이 대통령 입장에서 결코 녹록한 일은 아니다. 또한 한 치 떨어져 있는 행정부와 관료 집단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가까이서 살피고 그의 국정 운영 철학을 잘 보필하는 측근들을 중심으로 현안을 직접 챙기고 싶다는 대통령의 의지도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전임 대통령들 또한 취임 초기의 생각과 달리 임기 중반을 거치며 대통령실 중심의 정치적 돌파구를 추구하다 비판에 노출된 바 있고, 또한 윤 대통령 스스로가 비서실 축소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실 확대 개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다시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총선 결과 민심의 주문은 용산의 확대와 독주보다는 야당과의 협치를 통한 정치적 해법 마련이었다는 사실을 깊이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실#용와대 정부#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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