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30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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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번 학기에 일반물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이 과목을 통해 좀 더 심화된 물리학을 배우게 된다. 70명의 학생이 수강하고 있는데, 이 과목을 듣는 30퍼센트의 학생이 문과생이다. 영문학, 독문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아트&테크놀로지학 등 학생들 전공도 다양하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놀라운 일은 이 학생들의 성적이 평균 이상이라는 점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문과대학 학생들에게 물리학을 듣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하고 싶어서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가 대부분이었다. 이 이야기에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20대가 가진 장점은 이런 것이다. 하면 뭔가 재미있을 것 같은 호기심.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 어떤 확실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시도해 보는 무모한 열정. 앞으로 나아가는 힘. 언젠가 이런 것들이 그들에게 삶에 필요한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똘망똘망한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나 역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문과대학을 기웃거렸다. 신문방송학과(현 커뮤니케이션학과) 이근삼 교수님의 ‘대중문화론’과 ‘연극론’을 듣기도 했다. 희곡집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의 일환으로 연극에도 참여했다. 단역이지만 연기를 했던 경험은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한 편의 연극 출연은 지금까지도 내게 멋진 추억이다. 청춘의 이 한 페이지가 없었다면 아마 쓸쓸했을지도 모르겠다.

국문학과 김학동 교수님의 수업도 기억에 남는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에 다녀온 경험과 함께 시인의 삶을 좇아 시를 이해하는 수업 역시 내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 주었다. 시인의 삶과 시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에게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그때 읽은 김학동 교수님의 ‘그래도 사과나무는 심어야 한다’라는 수필집은 글쓰기에 대한 나의 열망을 일깨웠다.

오후 시간이 한가하면 옆 연구실의 블랙홀을 연구하는 김 교수에게 찾아간다. 내 방과 달리 깔끔하게 정리된 이론물리학자의 연구실. 실험물리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이론의 세계는, 같은 물리학을 연구하지만, 또 다른 차원의 세계다. 광활한 우주의 법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듣다 보면 멋진 세상을 경험하는 것처럼 신선하다. “요즘 무슨 연구 해요?” 하면 김 교수는 자신이 쓰고 있는 논문에 관해 친절히 설명해 준다.

고전물리학을 통해서는 구분할 수 없었던 우주 별의 내부 구조를 양자역학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나노 세계의 물질을 연구하는 것처럼, 양자역학을 이용한 우주 관찰 이론으로 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을 발전시켜 우주를 양자화하면 보이지 않는 우주의 법칙을 알아낼 수 있다는 이론이다.

과학의 발전은 사고 방식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19세기의 개념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과연 새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현재의 물질 문명은 분명 양자적 시공간에 대한 사고방식의 산물인데, 고전적 시공간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앞으로 향할 수 있을까? 현재의 우리 사회가 과연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지 묻고 싶은 날들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일반물리학#문과생#사고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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