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여행, 나와 친해지는 시간[길 위의 사색]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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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이영민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몇 년 전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에서 당찬 한국인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달의 피라미드 정상에서 탁 트인 시야의 웅장한 유적들을 내려다보며 그녀는 가장 앞부분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었다. 한국인임을 직감했다. 다가가 확인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한 대기업의 중견 직원이었던 이 여성은 얼마 전 사표를 내고 두 달 일정으로 라틴아메리카를 홀로 여행하는 중이었다.

그분의 진지한 표정과 평온한 말투는 나의 뇌리에 강하게 꽂혔다. 퇴사 후 자신의 미래에 대한 막막한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지리학을 공부한다는 나의 소개를 듣고 그간 보았던 것들 중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었다. 그런데 사표를 냈다는 그녀의 말에 은근한 걱정의 기운이 내 눈빛에 실려 있었나 보다. 대뜸 자기는 이 여행이 외롭고 고되지만 새로운 힘을 주는 여정이라고, 불안한 미래보다는 낯선 장소,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어차피 흘러가는 인생에서 과거는 굳어져 버린 과거일 뿐이다. 하지만 미래는,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을 주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 아니겠는가.

‘홀로’ 여행을 통한 자아 성찰과 미래 설계! 참 그럴듯한 시도이다. 하지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두려움이 앞선다. 혼자라는 외로움도 꽤나 두려운 문제일 것이다. 특히 개인보다 가족과 국가를 우선시하는 집단 지향적 문화를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습득해 온 중년 이상의 한국인의 경우 ‘홀로’ 여행의 외로움과 불안감은 상대적으로 더 큰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용기를 내어 꼭 한 번은 ‘홀로’ 여행을 감행해 보기를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추천한다.

‘홀로’ 여행에서는 모든 것을 내가 주도하여 부지런히 결정하고 실천하고 정리해야 한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즐겁고 행복한 경험들을 오롯이 나의 몫으로 품게 된다. 만약 현지 사정에 의해, 혹은 스스로의 실수에 의해 예기치 못한 문제에 봉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든 유연하게 해결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내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어 알지 못했던 제법 괜찮은 내 능력들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어 주기도 한다.

‘홀로’ 여행은 또한 호젓하게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과연 나는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홀로’ 여행은 나 자신과 더욱 친해지는 시간임에 틀림없다. 외로울 틈이 없는 분주한 활동이고 자아 발견의 지름길이다. 그런 과정에서 나에 대한 자애감, 자존감은 자연스레 높아진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혼행을 한번 감행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굳이 멀리 해외로 나갈 필요도 없다. 안전한 곳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 보시라. 기차로, 버스로, 아니면 도보로 다 좋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혼자 여행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 내 몸과 정신을 오롯이 부여잡고, 내 속을 들여다보면서 훌쩍 떠나 보자. 돌아오면 내 인생의 새로운 나침반이 생길지도 모른다. 새로운 활력이 한껏 솟아날 것이다.


이영민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홀로 여행#나와 친해지는 시간#자아성찰#미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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