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수용]日언론의 수출규제 비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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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 1031호실에는 화이트보드 1개, 테이블 2개, 의자 4개뿐이었다. 바닥에는 부서진 의자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이 창고 같은 회의실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실무자 회의가 열렸다. 반도체 제조에 쓰는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를 한국에 수출하기 힘들게 하는 규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 직후 나온 경제 보복이었다. 그때 ‘창고 회의실’에는 일본 정부의 적대감이 가득했다.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시적인 적대감에 사로잡힌 제재가 역효과를 초래한다”며 일본의 수출 규제를 실패 사례로 들었다. 2019년 수출 규제 당시 일본 정부는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등을 한국에 수출할 때마다 일일이 허가를 받도록 했다. 5000억 원이 채 안 되는 일본 기업의 수출을 규제해 145조 원이 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타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2019년 이후 2년 만에 수출 규제 품목 중 한국의 불화수소 수입액은 66% 줄었고, 주요 100대 품목의 일본 의존도는 30.9%에서 24.9%로 감소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 수출 규제를 “일본 통상정책의 흑역사”라고 비판했다. 원래 일본은 경제적 수단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데 그 불문율을 깨면서 한국이 통상무대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정치적 이유로 경제 보복을 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한국의 수출관리 체계 탓으로 돌렸다. 글로벌 경제 파트너로서 신뢰를 스스로 저버렸다.

▷경제 보복 이후 한국 기업들이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에 나섰지만 소부장 분야에서 완전한 기술 독립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부장 품목인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벨기에산 수입이 늘었지만 알고 보면 일본 기업의 벨기에 자회사로부터 구매한 물량들이다. 반도체용 레이저 절단기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고, 반도체 웨이퍼 식각 등을 위한 분사기 등은 일본산 수입 비중이 90%를 넘는다. 일본의 수출 규제 실패는 자업자득이지만 한국도 ‘가치 사슬’로 연결된 세상에서 일본을 빼고 기업 하기는 어렵다.

▷수출 규제 이후 일본의 소부장 기업들 중에는 아예 한국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 TOK는 인천 송도에 있던 기존 공장을 증설해 포토레지스트 생산 능력을 대폭 늘렸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면서 자국 대신 한국에서 고용을 늘리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에는 웨이퍼 재료, 포토레지스트 등 주요 품목과 관련해 탈(脫)일본화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늘고 있다. 모든 보복과 규제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일본#언론#수출규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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