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상기시킨 이성윤 공소장 논란[광화문에서/황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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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사회부 차장
황형준 사회부 차장
예전 법조 출입기자들은 검찰이 보낸 공소장이 법원 영장계에 도착하면 다음 날 아침 법원에서 공소장을 열람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고 본인 사건 공개에 대한 민원인의 항의가 잇따르자 법원은 2017년 9월 법조 출입기자단에 대한 공소장 제공을 금지했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공개됐던 정보가 수면 아래로 들어간 만큼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약화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인터넷과 카카오톡 등 메신저가 보편화되면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커진 만큼 기자단에서도 법원의 방침에 저항할 도리가 없었다.

이후 언론사들은 첫 재판이 이뤄진 뒤에야 법원으로부터 공소 요지를 제공받거나 국회를 통해 공소장을 입수하는 등 기존에 비해 취재에 어려움이 커졌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언론의 정보접근권은 점차 제한돼 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 이후 법무부는 2019년 12월부터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시행하며 전문공보관제 도입과 기자의 검사실 출입 금지 등을 시행했다.

이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2월 “언론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되어 온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며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이 침해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이에 추 전 장관은 국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국회가 요구한 ‘울산시장 선거공작 사건’ 공소장을 제출하지 않았고 동아일보는 해당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며 문제 제기를 했다.

공소장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재점화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를 유출한 검찰 관계자에 대해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면서다. 법조계에선 공무상 비밀 누설 판례에 따라 “공소장 유출로 인해 국가 기능에 위험이 발생하리라고 볼 만한 사정이 없기 때문에 범죄 성립이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8일 “첫 재판 이전 공소장 공개는 안 된다. (공소장 공개가) 죄가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원칙의 문제”라고 했다.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담긴 공소 제기 전 공개 금지 등을 지칭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박 장관의 과거 언행과 차이가 있다. 박 장관은 2016년 국정농단 특검법을 발의할 당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외의 수사 과정을 언론에 브리핑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도 ‘피의사실을 공소 제기 전에 공표한 경우’에 한해 처벌한다. 공소 제기 후 공소장 공개에 대해선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비밀 누설에 해당되지 않던 게 몇 년 뒤 같은 죄목으로 처벌받는다면 법적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것인가.

첫 재판 이전 공소장 공개 금지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면 장관 뜻이 반영된 법무부 훈령으로 만들 게 아니다.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가 민의 수렴을 거쳐 관련법을 제정 및 개정해야 할 것이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이성윤 공소장 논란#언론 정보접근권#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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