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대출이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한 만큼 정부가 선제적인 관리에 나서는 건 당연하다. 1800조 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미국의 긴축 움직임, 국내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금융 불안 등과 맞물려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위험이 됐다. 대출을 억제해 집값 상승 등 자산시장 거품을 잡아보겠다는 정부의 계산도 깔려 있다.
하지만 지금의 총량 규제 방식은 대출 수요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묻지 마’식 돈줄 조이기라는 지적이 많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대출자들이 찾는 저축은행, 상호금융, 카드사 등 제2금융권도 당국의 압박에 대출 축소에 나섰다. 대부업체도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대출을 조이고 있다. 여기서도 돈을 구하지 못한 취약계층은 고금리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대출 총량은 잡힐지 몰라도 대출의 질은 더 악화되는 셈이다.
가계빚 급증의 주된 원인은 저금리와 집값 급등이다. 주택 공급은 외면한 채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물리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부추긴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집값과 전셋값이 치솟고 이에 비례해 대출 총량이 늘어나는 구조가 만들어졌는데, 그 책임을 대출자들에게 떠넘긴다는 원성이 쏟아지는 이유다. 인터넷 카페 등에는 “정부가 집값은 안 잡고 ‘대출 사다리’마저 걷어차느냐” “집값 급등으로 ‘벼락거지’ 만들더니 전세대출마저 막혀 월세로 나앉게 생겼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순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한 가계부채 추가 대책을 발표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이 잡히지 않는 한 대출 수요는 줄어들기 힘들다.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대출 규제뿐 아니라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와 양도소득세 한시적 인하를 통한 공급 확대 등 입체적인 정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무차별적인 대출 총량 관리보다는 주거비 부담이 급증한 무주택자와 긴급 생활자금이 필요한 서민, 자영업자 등을 배려하는 정교한 ‘핀셋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