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희균]중국의 노래방 금지곡에 웃을 수 없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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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성 원칙 측면에선 우리가 더 참담
헌법 기본원리 짓밟힌 곳에 내일은 없어

김희균 문화부장
김희균 문화부장
중국 정부가 가사가 음란하거나 민족 단결에 해가 되는 노래를 ‘노래방 금지곡’으로 정해 10월부터 전국 노래방에서 없앨 거란 보도가 최근 나왔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과거에도 ‘나는 대만 여자를 좋아해’ ‘베이징 훌리건’ ‘학교 가기 싫어’ 같은 노래를 금지곡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 기사의 댓글에는 우습다거나 어이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웃고 있을 처지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의 오늘이 중국의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우리의 오늘이 우리의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헌법 기본 원리인 ‘명확성의 원칙’ 측면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금지곡 목록이나 과거 우리나라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은 금지 대상이 명확하게 고지됐다. 중국 정부가 금지한 노래는 노래방 기계에서 삭제되므로 ‘한국 남자를 좋아한다는 노래는 불러도 되나?’ ‘워싱턴 훌리건에 대한 노래는 해도 되나?’라는 의문을 품을 여지가 없다. 5공 시절 보도지침은 ‘금일 ○○대학생 시위 중 개헌 요구는 보도하지 말 것’ ‘○○○ 의원 공판 사진은 쓰지 말 것’ ‘필리핀 민주화 시위는 국제면에 작게 쓸 것’처럼 깨알 같았다.

정부가 특정 노래를 금지하는 것도, 언론 보도에 개입하는 것도 모두 반민주적이다. 더욱이 명확한 기준조차 없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건 어떤가?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하고 있는 언론중재법의 문제점 중 하나는 모호함이다. 처벌 대상도, 이유도, 요건도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다. 법 조항에는 명확한 개념 정리가 필수다. 헌법재판소는 명확성의 원칙에 대해 여러 판례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명확성의 원칙은 모든 기본권 제한 입법에 요구된다. 규범의 의미 내용으로부터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를 수범자가 알 수 없다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확보될 수 없고, 또한 법 집행 당국에 의해 자의적 집행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은 처벌 대상인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를 말한다’(제2조 17의 3)고 규정하고 있다. 대체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거나 저의를 감추려 할 때 쓰는 동어 반복 화법이다.

처벌 요건 역시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보도’ ‘충분하지 않은 검증’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사생활의 핵심 영역 침해’ 등 모호하다. 최근 많은 언론이 주요하게 다룬 뉴스들에 이를 대입해 보았다. 일명 ‘흑석 선생’으로 불리는 고위층이 검찰에서 투기 의혹을 받던 부동산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발표해 이를 종합적으로 보도한 경우 그가 보복적이고 반복적인 보도라고 한다면? 해군 공군 성폭력에 엉망으로 대처한 군이 육군 성폭력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의혹을 제기한 경우 관련자가 충분한 검증을 하지 않은 보도라고 한다면? 이중국적에 의한 병역면제를 비판했던 공인이 정작 자신의 자녀들은 해당 사유로 군에 안 갔다는 보도에 대해 사생활의 핵심 영역 침해라고 한다면 언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 민주당은 이런 법을 탄생시키려 한다. 법치주의가 사라지는 오늘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내일 우리에게선 또 무엇이 사라질까?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중국 노래방 금지곡#명확성의 원칙#언론중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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