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수]나도 샤넬을 살 수 있을까… 패닉바잉의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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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요즘 백화점에 갈 때마다 놀란다. 평일에도 샤넬 매장은 대기가 많아 구경도 못 하기 때문이다.

한 지인은 “하루 종일 백화점에서 죽치고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리셀러에게 40만 원 웃돈을 주고 샤넬 백을 샀다”고 했다. 줄서서 물건을 사다 주는 리셀러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주부도 많다고 한다.

왜 샤넬일까. MZ세대의 보복 소비, ‘똘똘한 집 한 채’처럼 똘똘한 명품 하나로 몰린다는 여러 분석이 나온다. 수요가 늘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샤넬은 언제나 예물백으로, 로망백으로 불황에도 인기가 높았다. 아침마다 샤넬을 사러 백화점에 뛰어들어가는 ‘오픈런’의 일상화는 수요보다 왜곡된 공급이 빚은 기현상으로 보는 것이 맞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야기한 공급망 병목현상의 대표 사례인 셈이다.

원래 유럽에서 팔리는 샤넬 백의 절반 이상은 중국 한국 관광객 몫이었다. 하지만 2020년 2월 이후 여행길이 끊기자 한국 소비자들은 전 세계 수백 개 매장과 면세점에서 살 수 있던 샤넬 백을 서울과 대구, 부산에 있는 10여 개 매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루이비통이나 디올은 공식 온라인몰에서 구매가 가능하지만 샤넬 가방류는 오직 매장에서만 살 수 있다.

공급망이 좁아지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리셀러에게도 수십만 수백만 원 웃돈을 주고 사는 판이니 회사가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샤넬은 작년부터 수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가격은 오르는데 살 수는 없는 애타는 마음은 패닉 바잉으로 이어져 수요 폭증, 공급 부족, 가격 인상으로 돌고 돌게 된다.

반면 ‘샤넬의 자유무역 시대’에는 가격이 내려간 적도 있었다. 2015년 국내 가격은 20% 내리고 유럽 가격은 10% 안팎으로 올렸다. 아시아에서 유독 비싸게 팔던 ‘국가별 가격정책’을 버리고 ‘글로벌 가격 일치화(하모니제이션)’ 전략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너무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유럽으로 달려가 매장을 초토화시키는 것을 막고, 각자 자국 매장에서 사게끔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팬데믹이 야기한 공급망 문제로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해 줄서서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은 여기저기서 속출하고 있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반도체 부족으로 인기 차종은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세계 1위 야마하 디지털 피아노도 반도체 부족과 물류 대란으로 수개월 기다려야 겨우 물건을 받는다. 반도체뿐 아니라 철강, 레진, 구리 등 원자재가 모조리 귀해져 기업 구매팀마다 ‘오픈런’처럼 여기저기 줄을 서며 물건을 달라고 외치는 일이 일상이 됐다.

귀해지고 비싸진 핵심 부품과 원자재 탓에 산업계는 몸살을 앓고 있고, ‘경제 안보’가 각국마다 핵심 의제로 떠오르는 데 속도를 붙여줬다. 샤넬이 반도체처럼 필수품이었다면 미국과 중국 정부는 ‘메이드 인 프랑스’를 포기하고 자기 나라에서도 만들라며 프랑스를 압박했을 것이다. 사치품인 샤넬을 두고 그럴 리는 없으니 백화점 오픈런의 일상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돈도 없지만, 있다 해도 매장에 발도 못 들이는 날이 길어질 것 같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샤넬#리셀러#패닉바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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