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의 文대통령 의전행사가 보는 내내 불편한 까닭은…”[이진구 기자의 對話]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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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래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왼쪽)은 “문재인 대통령 참석 행사가 ‘쇼통’ 시비에 휘말리고 보는 내내 불편한 것은 진짜 주인공 대신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강래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왼쪽)은 “문재인 대통령 참석 행사가 ‘쇼통’ 시비에 휘말리고 보는 내내 불편한 것은 진짜 주인공 대신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경기 화성 공공임대아파트 방문을 놓고 ‘쇼통’ 논란이 일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빈집 두 채에 4200여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했기 때문. 지난해 6월 국군 유해 송환 공중급유기 행사, 9월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 임명장 수여식, 12월 탄소중립선언 연설 등 문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는 늘 비슷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강래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47)은 “진짜 주인공들을 제치고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만들다 보니 생기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 보좌관을 거쳐 이명박(MB) 정부에서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핵 안보정상회의 등 국내외 주요 행사를 기획·총괄했다.》

―대통령이 행사의 진짜 주인공들을 제치고 있다고 했는데….

“6·25전쟁 참전 용사 유해 송환 행사의 주인공은 누가 돼야 할까?” (그야 참전 용사 유해, 유가족 등 아닌가.) “당연하다. 그런데 ‘국민과의 대화’(2019년 11월), 정 질병관리청장 임명장 수여식, 공공임대아파트 방문 등 거의 모든 행사에서 부각된 주인공은 문 대통령이었다. 최고의 의전은 VIP를 띄우는 게 아니라 행사의 진짜 주인공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을 감동시키는 거다. 대통령을 위한 행사가 되면 대통령 본인은 좋겠지만 진짜 주인공은 소외되고, 참석자는 힘들고, 뉴스를 보는 국민은 불편해진다. 그래서 ‘쇼통’이라고 하는 거다.”

―대통령 행사에 LH처럼 주최 측이 과잉 의전을 하는 경우가 많은가.

“2009년 10월 인천대교 개통식 때였는데 환담장과 행사장 사이에 사전 답사 때는 없었던 새 길이 생겼다. 대통령이 조금 돌아가게 된다고 화단 중간을 끊고 길을 만든 거다. 어떤 기관은 대통령이 온다고 건물 내부에 새 페인트칠을 해서 냄새 빼느라 밤새도록 대형 선풍기를 돌린 곳도 있었다. 대통령이 군부대를 방문하는 건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되레 며칠 동안 막사 페인트칠 하고, 풀 뽑느라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잘 바뀌지 않는다.”

―논란이 일자 LH는 “임대주택을 입주민이 거주 중인 아파트처럼 가정하고 꾸며서 공개하기로 계획된 행사”라고 밝혔다.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냐면… 실제 주민 중 인테리어에 2000만 원이나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실제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 아닌가.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은 서민 주거 문제 해소를 위해 가는 게 맞다. 그래서 현장에서 사는 데 불편은 없는지,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등을 직접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니까 공공임대아파트로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기획·홍보 차원으로 간 것 아닌가. 그러니 실제 주민들 집을 방문해 어떻게 사는지를 살펴보는 건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또 썰렁한 빈집을 보여주면 유인 효과가 떨어지니까 집당 2000만 원씩 들여 멋지게 인테리어를 한 거고…. 보통 집 전체를 공사하려면 기간이 오래 걸리는데 짧은 시간 내에 하려다 보니 아마 비용도 더 비싸게 줬을 거다. 당연히 공사 소음으로 주민들은 엄청 피해를 입었을 테고.”

※해당 동 주민들은 언론에 “드릴 소리 때문에 새벽 3, 4시부터 거의 못 잤다”고 말했다. 해당 임대주택은 보증금 약 6000만 원에 월세가 19만∼23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대화를 나눈 상대가 주민들이 아니고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변창흠 차기 국토부 장관 후보자여서 이상하기는 했다.

“코미디가 따로 없는 거지. 그리고 대통령이 장관들과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는데… 주민들을 만났다면 바닥에 앉아 이야기하는 게 정상이다. 사진을 보니 대통령과 일행들이 집 안에 아예 신발을 신고 들어갔더라.” (요새 임대주택은 서양식인 줄 알았다.) “신발을 안 벗었으니 바닥에 앉을 수도 없던 거지. 우리나라에 그런 아파트가 어디 있나. 사실 그런 디테일들은 진짜 전문가라면 담당 의전관의 행사 시나리오에 다 적혀 있다. ‘대통령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이렇게….” (실무진이 그런 디테일을 전혀 몰랐을까.) “몰랐다면 정말 무능한 거고…. 내 생각에는 실무진 회의에서 실제 주민 집을 방문해야 한다,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등 문제점이 분명히 지적됐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를 지적해도 위에서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고 찍어 누르면 별수 없다.” (누가 찍어 눌렀을까?) “짐작이 가는 사람이 하나 있지 않나. 의전비서관.”

4200여만 원을 들여 모델하우스처럼 개조한 빈집. 그 집을 “진짜 아늑하다”며 칭찬한 대통령. 빈집을 개조하고 대통령을 안내한 LH 사장은 얼마 후 국토교통부 장관이 됐다. 문 대통령은 공공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전부 자신이 방문한 집처럼 꾸미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실제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연계된 야외 행사 예산도 4억1000만 원이나 책정됐다고 한다. 대통령이 한번 나가면 그렇게 돈이 많이 드나.

“행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참석하면 주최 측이 최상급 행사 기획사를 쓰기 때문에 기본이 억 단위다. 2011년 9월 농협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는데 사전 답사 때 보니 관중석 상단을 초대형 현수막으로 도배를 했다. 장당 1000만 원이 넘는 것이었다. 경기장 내 스피커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별도의 스피커는 설치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크레인이 대형 스피커를 설치하고 있었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대통령 목소리가 구석구석 잘 전달돼야 한다고…. 중단은 시켰지만 결국 행사 후 ‘농협 50주년 행사 33억 원 돈 잔치’라는 기사가 났다. 68억 원을 책정했는데 외부 비판을 의식해 그나마 줄인 거라고….” (LH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야외 행사가 축소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행사를 안 치렀어도 돈은 거의 다 지출됐을 거다. 중간에 취소했다고 준비한 업자들에게 안 줄 수가 없지 않나. 사전 준비에 들어가는 돈도 있는데…. 사실 쇼 중의 쇼는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 임명장 수여식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1시간을 달려가 직접 줬다며 문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장소는 사전에 경호실에서 속된 말로 완전히 ‘깐다’. 건물 전체를 전부 검측하고 행사 전날 저녁부터는 완전히 봉쇄하는 게 보통이다. 원격조종 폭발물, 드론 등의 공격에 대비해 전파 방해를 하기 때문에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간다. 수여식을 한 곳이 긴급상황센터 아닌가. 시시각각으로 올라오는 보고를 받고 지시하고 조율하는 최전방 컨트롤 타워다. 그런 곳을 탈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이 엄중한 시국에 일시 정지시켜 놓은 거다. 뒤에선 직원들이 뭐하고 있던가.” (병풍처럼 둘러서 사진 찍고 박수치고 있던데….) “대통령 없이 자기들끼리 그런 행사를 했다면 아마 언론에서 난리가 났을 거다. 나중에 거리 두기를 위반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거다. 정 청장을 위해 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를 빌려 문 대통령을 띄운 것이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대통령 의전 기획은 늘 이런 식이다. 그러니 쇼통이라고 하는 거고. 대형 사고가 터지면 국민들은 대통령이 현장에 안 가고 뭐하냐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가면 안 된다. 모든 인력이 대통령 경호에 몰두해 정작 구조 활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방해해도 안 되고….”

지난해 9월 코로나19 심각 상태에서 열린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 임명장 수여식.
지난해 9월 코로나19 심각 상태에서 열린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 임명장 수여식.
※질병관리청에는 수여식을 할 수 있는 큰 회의실도 있지만 센터처럼 ‘그림’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 행사를 의전비서관실이 주관하는 이유가 뭔가.

“대통령 참석 행사가 결정되면 담당 의전관이 정해지고 그의 주관 아래 경호, 홍보, 대통령비서실, 행사 기획사 등 관계자들이 모여 실무 회의를 한다. 그리고 그 최종 결과를 의전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업무적으로도 의전이 중심을 잡아야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경호는 대통령이 공개된 장소에 나가거나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걸 꺼린다. 홍보는 반대다. 중간에서 상황에 맞게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지 조절을 해야 하는데 이걸 담당 의전관이 할 수밖에 없다. 연설 시간에 햇빛이 대통령 얼굴을 비추어서 찡그린 표정이 나오지는 않는지, 혹시나 멀리 러브호텔 간판이 보이지는 않는지, 외부 참석자가 있다면 대중교통편은 불편함이 없는지 등 총감독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경호는 우리 상식과 다른 일이 많이 벌어진다. 온도 검측 담당 경호원과 싸운 걸 생각하면….”

―대통령 체감온도까지 살피나.

“MB가 겨울에는 늘 내복과 조끼를 입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행사장에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더워했다. 그런데 그걸 난방이 과해서라고 여겼기 때문에 경호실에서 늘 온도를 측정하고 일정하게 유지했다. 2010년 3월 대전에서 업무보고를 받는데 어디서 찬 바람이 쏴하고 들어오더라. 열린 창문도 없는데 이상해서 보니 방문 하나가 열려 있는데 경호원이 그 안에 있는 대형 에어컨을 틀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 온도가 올라가는데 경호상 창문은 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더우면 에너지 낭비라고 대통령한테 혼날 것 같고, 창문은 열 수 없으니 적정 온도 유지를 위해 3월에 에어컨을 튼 거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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