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추행 은폐 방조 의혹 서울시, ‘박원순 아카이브’ 만들 땐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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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부하 직원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업적을 기리는 기록물보관소 ‘박원순 아카이브’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박 전 시장이 재임 중 업무를 추진하면서 생산하고 접수했던 모든 기록물과 업무용 노트북, 휴대전화를 모아 지난해 5월 개관한 서울기록원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기록물의 경우 사적인 기록물까지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관리하지만 단체장 기록물에 관한 별도의 법은 없다. 공공기록물 관리법 개정에 따라 ‘개인’이 아닌 ‘광역 단체’의 기록물 관리가 의무화됐을 뿐이다. 그런데 박 전 시장 별도의 아카이브를, 그것도 그의 성추행 의혹 수사가 막 시작된 시점에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것이 전례가 돼 다른 시도에서도 경쟁적으로 단체장의 홍보용 아카이브를 설치하려 들지 모른다.

서울시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방조 및 고소 사실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수사 대상이다. 서울시 직원인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할 의무마저 외면해 피해자는 물론 법률대리인까지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과 검찰 수사도 지지부진한 가운데 박원순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은 57만 명의 반대 국민청원에도 5일간의 서울특별시장(葬)을 강행한 것처럼 피해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서울시가 박원순 아카이브에 보존할 기록물과 물품에는 성추행 피소와 자살 등 불미스러운 사건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기록물의 ‘직무 관련성’을 따지다 보니 빠지게 된다는 것이 서울시 측의 해명이나 이것 또한 말이 안 된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공공기록물을 보존 관리하고 활용토록 하는 목적은 단체장의 미화가 아니라 투명하고 책임 있는 행정을 구현하고 기록물의 공유와 기억을 통해 교육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이다.

박 전 시장이 남긴 기록물은 이번 수사와 처벌이 마무리될 때까지 단순 보관에 그치는 것이 맞다. 시장 사망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1000만 도시 행정의 최종 책임을 맡게 된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임기가 내년 4월 7일 재·보궐선거 때까지로 여느 권한대행보다 역할과 권한이 크다. 박원순 아카이브 설치 같은 정치적 의혹을 사는 행보로 소모적 논쟁거리를 만들기보다 서울시민의 안전한 일상을 위해 힘쓰는 한편 성추행 의혹 수사 및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결과에 따라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서울시민을 위한 일이고 박 전 시장을 두 번 죽지 않게 하는 일이다.
#서울시#박원순 아카이브#서울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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