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비례대표제를 어쩔 건가[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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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정당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무색
한국 사회 다양성 반영하는 국회 돼야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작년 초 뉴욕타임스(NYT)에는 ‘브렉시트와 미국의 셧다운’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으로 정부가 멈춰서 공무원 월급도 못 줬고, 영국은 브렉시트 논란으로 정치가 식물 상태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두 나라는 모두 양당 체제다. NYT 기사는 나라를 마비시킨 극한 대결의 원인으로 거대 양당체제를 꼽았다.

미영식 양당체제는 예전엔 정부의 안정성이 장점으로 꼽혔지만 최근 정반대의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모든 것을 ‘반(反)오바마’로 일관했다. 전 국민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하려는 ‘오바마케어’를 무력화시켰고 이란과의 핵 협정도 파기했다. 공화당 정권이냐 민주당 정권이냐에 따라 국내외 정책이 180도 바뀌는 것이다.

오히려 강력한 단일 정권의 출현을 막아 안정성이 떨어진다던 다당제는 정권이 바뀌어도 주요 정책의 기조가 유지되는 사례가 많다. 독일은 사민당 시절 추진했던 동방정책을 기민당이 이어받아 통일을 이뤘고, 기민당 출신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 슈뢰더 총리의 노동개혁과 높은 복지제도를 이어받았다. 협상과 조정의 정치를 하는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대부분 다당제다.

한국은 대표적인 거대 양당 체제다. 호남과 영남 양쪽 지역에서 공천만 받으면 수준 미달 인물도 국회에 입성한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개혁하지 않고 세금만 축내도 각각 100석은 앉아서 얻는다. 양 지역에서 다른 당 후보를 찍은 표는 전부 죽은 표(사표)가 된다. 집권 여당은 독주하고 야당은 사생결단으로 뒷다리 잡는 것도 미영과 다르지 않다.

반면 군소 정당이 들어설 자리는 상대적으로 작다. 개혁적 보수를 외쳤던 유승민의 바른정당이나 중도를 주장하는 국민의당, ‘성장이냐 분배냐가 아니라 환경이다’라는 녹색당, 노동자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정의당 같은 제3당은 “보수통합 또는 진보통합에 방해된다”며 구박받기 일쑤다. 유권자들도 어차피 사표가 될 바에야 양당 후보 중 한 명을 찍든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며 기권해 버린다.

그나마 한국은 일부 비례대표제를 섞은 혼합형 선거제라서 군소 정당이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득표율과 의석수의 차이가 크다. 따라서 정당 득표율을 반영하는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최장집 손호철 강원택 교수 등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방향이다.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권고안으로 내놨다. 전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눈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사실 1등만 살아남는 선거제를 통한 양당제는 미영 등 일부 국가에만 있는 별종이다.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들과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은 정당명부식이든 혼합형이든 비례대표제를 통한 다당제를 하고 있다. 비례대표제는 국민의 표를 의석수에 반영하는 비례성이 높다는 것이 장점인데, 앞의 사례처럼 정책의 안정성까지 높다면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도 오만한 거대 양당을 혁신하고 사표를 줄이며 타협과 합의의 정치를 구현할 다당제를 만들어 보자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첫발을 뗐다. 그러나 코앞의 이익에 눈먼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드는 바람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4·15총선은 끝났지만 선거제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선거에도 위성정당을 허용할 순 없으니 선거법을 다시 개정해야 할 것이다. 위성정당을 막을 규정을 만들든가, 과거로 돌아가든가, 제3의 방법을 찾든가 셋 중 하나다.

한국 사회는 점점 다원화되고 있다. 이제는 흑백을 벗어나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의 정당, 차악이 아니라 내 성향을 맞춤형으로 대변해주는 소수 정당들이 더 많이 국회로 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비례대표제#위성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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