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연말 지자체·교육청의 예산 소진 경쟁에 낭비되는 혈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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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청이 연말까지 재정 집행률을 최대한 끌어올릴 것을 압박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들이 막바지 예산 소진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 자치구와 소속 기관들은 11월 이후 169건의 ‘긴급 입찰공고’를 냈는데 북카페 도서 구매, 취약계층 가정용 공기청정기 구입 등 긴급하지 않은 소비성 사업이 다수 포함됐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연말에 관내 학교 사물함과 책걸상, 칠판을 대거 교체하고 있다.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예산 이월, 불용 예산을 줄이고 지자체도 최대한 협조해 달라”고 직접 당부했다. 그러자 당정청이 앞다퉈 예산 집행 실적을 높이라고 독촉하고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예산 대비 재정 집행 실적 목표치를 지자체는 90%, 교육청은 91.5%로 제시해 수시로 실태 점검을 하고 있고, 행정안전부는 2021년도 예산 배정에서 예산을 많이 쓴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이런 지자체에 100억 원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데 돈을 쓰라고 돈을 쓰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 예산의 71%가 상반기에 집중 배정돼 있다. 상반기에 배정된 예산 비율은 2013년 이후 가장 높고, 그 액수도 처음으로 300조 원을 넘어섰다.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인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엄청난 돈이 풀리는 것이다. 그런데 예산 집행을 감시하고 견제할 기능은 무력화됐다. 현 정부 들어 500억 원 이상 사업에 적용하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급증했고 선거를 앞둔 국회 역시 예산 낭비를 방조한다.

정부가 경기 침체 위기를 재정 확대로 돌파하려면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효율적인 집행을 해야 한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일수록 거품이 낄 우려도 크다. 지자체와 교육청들이 못 써서 안달이 난 그 예산은 집 안 가재도구 하나 새로 장만하는 데도 수없이 망설이고 싼 곳을 찾아 헤매는 시민들이 낸 세금이다. 혈세(血稅) 아까운 줄 알아야 한다.
#재정 집행률#지방자치단체#시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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