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안영배]100년 전 오늘 아우내 장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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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천순대로 유명한 충남 천안시 병천(竝川)시장은 아우내 장터라고도 불린다. ‘아우내’는 여러 개천이 하나로 모인다는 의미다. 그 ‘아우내 장터’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100년 전인 1919년 4월 1일, 그곳에서는 천안 청주 조치원 진천 등에서 모여든 주민들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뜨겁게 외쳤다. 비폭력 운동에 대해 일제는 총검으로 진압했고 현장에서만 19명이 즉사했다.

▷그때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의 중심에 유관순 열사(1902∼1920)가 있었다. 그의 양친은 만세운동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집은 불태워졌다. 하지만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의 준비과정부터 투옥생활 중 잔혹한 고문으로 짧은 생을 마치기까지 10대 소녀가 보여준 기개와 애국심, 저항 정신은 눈부셨다. 그 일가의 항거 의지가 얼마나 두려웠으면, 만세운동 이후에도 일제는 집중 사찰을 계속했다. 1919년 7월 9일 충남도 장관 구와바라 하치시가 조선총독부에 올린 동향보고에는 “유관순 일가는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처분돼 일가가 거의 전멸하는 비참한 지경에 빠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 활약상은 뒤늦게야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내내 쉬쉬하며 묻혀있었기 때문이다. 유 열사와 그 가족의 항일 소식과 희생을 처음 알린 것도 해외의 동포신문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한 ‘신한민보’는 1919년 9월 2일자에 ‘한 이화여학생의 체포―소녀의 양친은 원수에게 피살’이란 제목으로 첫 소식을 전했다. 국내에서는 1947년 11월 27일 병천리에서 열리는 기념비 제막식에 맞춰 동아일보가 ‘천고에 빛날 순국혼 유관순 소녀의 위훈’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 재조명이 시작됐다.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1년 뒤인 1920년 4월 1일 창간된 동아일보는 2001년부터 충남도와 유 열사의 모교인 이화여고와 함께 유관순상을 제정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손톱이 빠져나가고 귀와 코가 잘리고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 잃은 고통만은 견딜 수 없다.” 지난해 3월 뉴욕타임스가 ‘한국 독립을 위해 싸운 10대 순교자’라는 기사에서 인용한 유 열사의 발언이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유일한 슬픔”이라고 가슴 절절한 유언을 남겼던 젊은 독립투사. 그의 항거를 기억하고, 그의 이상(理想)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와 가치를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후손의 당연한 책무다.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아우내 장터#유관순 열사#일제강점기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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