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원주]지식재산, 경쟁과 협력 ‘두 날개’가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원주 특허청장
박원주 특허청장
독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는 연주회에서 가장 많이 올리는 곡 중 하나다. 오케스트라 전주와 거의 동시에 바이올린 독주를 시작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곡이지만 감미로운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조화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협주곡인 콘체르토에는 ‘경쟁하다’ ‘협력하다’라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경쟁과 협력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모두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우주 개발은 그중 하나다. 미국과 옛 소련의 우주냉전은 1975년 아폴로와 소유스 우주선의 도킹 시험으로 종지부를 찍었고 경쟁적 협력 시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우주정거장 미르를 거쳐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이르며 우주 개발은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우주 협력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지식재산 분야도 경쟁과 협력이 활발하다. 세계 경제의 3대 축이 동북아 3개국과 북미, 유럽연합(EU)인 것처럼 지식재산권 시장에서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한국 등 선진 5개 국가 및 지역 특허청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에 이른다. 한국은 특허출원 세계 4위, 상표출원 세계 7위, 디자인출원 세계 2위의 지식재산 강국이다. 선진 특허청은 심사 처리 속도와 품질에서 경쟁하며 출원인 편의와 제도의 조화 등을 위해 협력한다. 특히 상표와 디자인 분야는 선진 특허청의 협력체(TM5·ID5)를 통해 상표심사결과 비교분석사업과 디자인 등록요건 비교사업 등을 추진해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필요한 상표권과 디자인권을 획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다음 달 1∼6일 서울에서 한국을 의장국으로 TM5·ID5 연례회의가 열린다. 이번 연례회의는 처음으로 한국 주도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진 5개청의 상표, 디자인 분야의 협력을 모색한다.

산업혁명은 기술혁신이 촉발했지만 브랜드와 디자인의 옷이 입혀지면서 완성됐다. 1차 산업혁명에서 면직물산업을 성장시킨 것은 패턴디자인의 개발이었고 3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인 스마트폰에서도 사용자인터페이스(UI) 디자인이 차지한 비중은 컸다. 또 문자와 도형 중심에서 색채와 입체, 위치, 소리, 냄새까지로 상표의 선택권을 넓힌 상표제도의 기여도 컸다. 4차 산업혁명은 특허제도는 물론이고 상표와 디자인제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의 융복합화가 현실화되면서 가상·증강현실에서 상표의 무단 사용이나 가치 훼손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또 새롭게 등장하는 상표 유형과 상품을 어떻게 정의하고 수용할지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도 3차원(3D) 프린팅의 디자인권 침해 형태와 보호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선진 5개 특허청이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는 상표·디자인 제도 논의에 첫발을 딛고 협력 비전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기로 한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TM5·ID5 연례회의를 촉매제로 선진 5개청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성공적 도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경쟁과 협력을 시작하길 기대한다. 이 경쟁과 협력은 출원인의 편의를 넘어 산업의 혁신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박원주 특허청장
#4차 산업혁명#특허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