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강경화가 대통령대행 승계 5위인 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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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어디 갔나 했더니 교황청에서 카메라에 잡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얘기다. 강 장관은 10일 국회에서 5·24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한미 외교가를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13일 시야에서 돌연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수행했다 21일 돌아온 것. 기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강 장관은 유럽에서도 ‘한국 외교부 장관의 파워’를 실감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우리 승인 없이 한국은 아무것도 못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은 프랑스, 영국 정상을 만나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보기 민망할 정도로 거절당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제재 이행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트럼프의 생각이 강 장관 발언을 계기로 유럽에 더 강력하게 전달됐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외교부 장관이 정권과 무관하게 애물단지로 전락해서 그렇지, 국제사회에선 대통령을 제외하곤 외교부 장관이 정권의 간판이다. 미국은 외교부 장관을 국무장관으로 부르면서 대통령의 세계 경영을 대리한다. 이 때문에 국무장관은 늘 잠재적 대선 후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가 그랬다. 마이크 폼페이오도 차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로 거론된다.

그의 상대인 외교부 장관도 ‘스펙’은 만만치 않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외교부 장관 공관은 대지 면적 1만4710m²에 건물 면적 1420m². 한국 장관 공관 중 가장 크다. 더 놀라운 건 대통령권한대행 승계 순위다. 헌법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서로 권한을 대행토록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김동연 경제부총리-유은혜 사회부총리-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이어 강 장관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그 다음이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8위다. 강 장관이 외교안보라인과 군을 지휘하는 경우의 수도 있다는 얘기다. 폼페이오도 승계 서열 4위로 비슷하다.

강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 후 외교부 안팎에서 많은 이야기를 접했다. 가장 자주 들은 건 “장관님이 학습 속도는 빠른데…”였다. 북핵, 양자회담 등 강 장관이 유엔 근무 시절 잘 몰랐던 걸 그렇게 배웠는데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느냐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이런 진단은 잘못된 것이다. 강 장관의 문제가 콘텐츠 때문일까. 그보다는 국무위원으로서 어떤 메시지를 언제, 어떻게 발신하느냐는 전반적인 정무능력 부족이 핵심이라고 기자는 본다. 실제로 많은 장관이 이게 부족해서 옷을 벗었다.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영주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그랬다. 경질설이 끊이지 않는 장하성 정책실장도 머리보단 입이 문제다.

그런데 정무능력은 대치동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오래 부딪치며 단련해야 서서히 몸에 밴다. 혀로 하는 종합예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능력 때문이다. 미 국무장관들이 역대로 상·하원 의원이거나 공직 경험이 있는 중견 학자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청와대 주변에서 연말, 연초 추가 개각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누가 집에 가고 남을지는 알 수 없다. ‘안전제일’이라며 공무원, 정치인만 장관 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정무능력이 없다면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국정에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정치적 냉소만 키운다. 세금 낸 대가로 정부의 정책 서비스를 받아야 할 국민들이 물가에 내놓은 애 보듯 장관 걱정이나 하면 되겠나.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강경화#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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